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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 2000] 디지털 물결 문화산업도 빅뱅온다
입력2000-01-06 00:00:00
수정
2000.01.06 00:00:00
이용웅 기자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제임스 버크는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바뀐다는 것. 그것도 우리가 항상 상상하는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사람들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호모 사피엔스 운운한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은 유희적 인간이란 뜻의 「호모 루덴스」라고 불렸다.
사람들이 제대로 놀 줄 알게 된 데에는 산업혁명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한 것. 그리고 또 수백년이 지난 지금, 노는 것, 즉 문화는 「돈버는 기계」로 뒤바뀌게 되었다.
특히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문화는 생산과 소비의 양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가 산업이 될 것이고 이미 되고 있다는 지적은 많이 있어왔으나 우리나라 지식인들이나 관료사회에서 그같은 인식이 보편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문화가 돈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세에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대접을 못받고 있다고 말하면 다소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2000년대 초반, 문화산업의 핵심 코드는 당연히 인터넷이다. 얼마전 화가 고영훈의 홈페이지가 인터넷에 등장했는데 몇달 만에 조회수가 30만회에 육박했다. 우리나라 화랑들이 모두 모여 그림을 전시하는 화랑미술제에도 하루에 찾아오는 관람객은 불과 수백명 수준인 것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 보면 경이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기껏 수백에서 수천명의 고객들만 상대하던 세계적인 유명 화랑들이 인터넷 덕분에 수억명을 상대로 그림을 홍보하고 있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최근 미국에서 열렸던 「다음의 20년(THE NEXT 20 YEARS)」이라는 제목의 컨퍼런스에서 21세기의 주제를 다음의 4가지로 정리한 적이 있다. 디지털 통합, 인터넷 혁명, 이동 멀티미디어, 세계시장 개방 등이 그것이다. 통신, 컴퓨터등 21세기 주류산업이 결국 오락적 요소와 결합하면서 더욱 예측이 어려운 빅뱅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스타워즈-보이지 않는 위협」은 사상 처음으로 디지털로 만들어져 이제 셀룰로이드 필름이 사라질 운명이 예고되고 있다. 영화필름을 수십벌 찍어 운송하는 것은 앞으로 원시적인 형태가 되고 디지털 전송으로 순식간에 전세계에 확산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화를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만드는 일대 혁명이 진행중인 것.
디지털 혁명은 비단 영화쪽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미 지난 98년에는 미국 UCLA에서 디지털 오페라 「영광의 괴물들」이 상영되기도 했다. 공연시간 75분간 가수나 배우는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고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의 현란한 가상세계가 무대를 장식했던 것이다.
현재 소프트 북(WWW.SOFTBOOK.COM)에서 판매하고 있는 전자책의 경우를 보자. 전자책은 음악을 다운로드받는 MP3와 같은 개념인데, 전자책에 내장된 모뎀을 이용하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하고 다운받을 수 있는데, 최고 50만 페이지까지 내용 저장이 가능하다. 거대한 장식용 서가가 차지하던 공간을 다른 목적으로 쓸 일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처럼 급변하고 있는 문화산업의 디지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컨덴츠의 확보.
미술 포탈사이트를 출범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이호재 가나아트 대표는 『컨덴츠가 풍부해야 미술 소비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고 유용한 정보사이트 또는 판매사이트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유사 사이트와의 연결망 확보도 중요하다. 세계적인 인터넷서점 아마존은 얼마전 경매회사 소더비와 연결망을 구축했다. 소더비를 찾는 우수 고객을 그대로 서적 판매로 연계시키겠다는 속셈이다.
아마존과 대결할 수 있는 인터넷서점 북토피아를 준비하고 있는 이정원 도서출판 들녘 대표 역시 『수백개의 단행본 출판사들의 홈페이지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등 다양한 컨덴츠를 확보할 예정이기 때문에 올해 안에 국내 서적 판에도 인터넷혁명이 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북토피아에는 이같은 미래 전망을 확신한 탓인지 몇몇 창투사들이 거액을 서슴없이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디지털 콘덴츠의 ISBN으로 불리는 「DDI(DIGITAL OBJECT IDENTIFIER)」에의 대비 등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도 많다.
DDI는 97년 미국출판협회가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디지털서적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처음 도입한 장치로 저작물의 정보를 쉽게 식별하고 추적할 수 있는 표준 정보식별문자이다. 때문에 DDI는 비단 출판계 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 콘덴츠로 확산될 수 있는 디지털시대의 중요한 코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회기에서 통과시킨 저작권법 중에 도서관에서 서적을 디지털 복사해 다른 도서관으로 무제한 전송할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하는 이상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가 나서 디지털시대의 원만한 완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학술서적 출판사들의 도산을 부추키고 있는 형국이다.
저작권의 보호 없이 디지털 콘덴츠의 성장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양상을 보이며 진행중인 문화산업의 혁명, 즉 디지털화에 대한 합리적인 관심과 지원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해는 없고 말만 내세우는 문화산업 진흥정책은 오히려 문화의 후퇴만을 조장할뿐이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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