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폐허를 딛고 순항할 길은 무엇인가.' 2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의 고민이다. 그의 대안은 국제무역기구(ITO)와 국제청산동맹(ICU) 설립. 국제화폐 '방코르(Bancor)' 도입도 추가했다. 방코르는 세계중앙은행의 역할을 맡을 ICU가 국제무역 대금결제용으로 발행하는 세계화폐. 전쟁이 터진 경제적 이유를 '국제수지 흑자경쟁'으로 간주한 케인스는 어떤 국가도 시장을 장악하고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ICU와 방코르를 제시했다. 케인스의 방안에 따르면 각국은 은행의 당좌대월 고객처럼 ICU로부터 배정받은 한도(5년간 평균 무역 거래량의 절반)를 초과할 경우, 즉 수입이 누적돼 방코르가 부족할 경우 이자를 물고 환율을 내려야 한다. 반대로 수출이 많아 방코르가 쌓일 경우에도 일정액 이상은 이자를 부담하고 환율을 올리도록 했다. 케인스는 이 시스템으로 국제무역이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여겼다. 방코르 구상은 1941년 9월8일 발행된 '전후 통화정책'이라는 작은 책자를 통해 소개된 후 전후 국제경제 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영국의 공식의견으로 제안됐으나 금융 패권국으로 올라선 미국이 주장한 금ㆍ달러 본위제에 밀려났다. 그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초기에는 작동하는 것 같았으나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미국의 재정이 고갈되면서 세계의 골칫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케인스의 영혼이 방코르 부활의 주문을 걸고 있는 것일까.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무덤 속의 방코르가 주목 받는 분위기다. 미국은 일축하고 있으나 달러를 믿지 못하는 중국과 유럽 쪽에서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할 대안으로 방코르 도입론이 나오고 있다. '앙코르(encore), 방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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