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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라 쓰고… 해결사라 읽는다?

'한국의 사립탐정' 민간조사원



현행법상 정보수집·미행 등 금지
불법 흥신소·심부름센터로 낙인
국회 10여년간 제도화 논의 불구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진척 없어
법무부-경찰청 지도감독 이견도
"이해 떠나 국민 권익차원 해결을"


'이름 이00. 성별 남성, 나이 51세. 신장 약 177cm. 마른 몸매. 안경 쓰고 다님. 단 사진 없음. 주민등록번호 모름.'

가진 정보는 이것뿐. 하지만 그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이씨는 10년 전 거액의 투자사기를 벌인 뒤 잠적했다. 피해자들은 그의 처벌을 원해 고소했지만 고단수인 그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기 피해자들은 결국 민간조사원, 일명 사립탐정으로 불리는 남상범(59·가명)씨에게 도움을 의뢰했다.

지난 26일 기자와 하루 동안의 동행취재에 응한 남씨를 이른 아침 서울의 모처에서 만났다. 악수를 나누기 무섭게 남씨는 충북의 모처로 차를 몰았다. 사기꾼 이씨의 흔적을 찾은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일말의 단서를 발견한 남씨는 '목표물'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주택. 남씨는 우선 주변 위치를 살핀 뒤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만 아무에게나 다가가 묻지는 않는다. 그만의 노하우와 '촉'을 이용해 지역사정에 밝을 법한 이들만 선택했다. "여기 이00씨가 사는 곳 아닌가요? 뵙고 싶어 멀리서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많은 이들은 착각한다. 사립탐정이라고 하면 큰 망원렌즈를 기능 좋은 카메라에 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를 찰칵찰칵 찍는다고 말이다.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모습이죠. 실제는 많이 다릅니다." 남씨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추적 단계에서는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남기지 않는 것이 사립탐정의 원칙이다. 따라서 남씨는 업무와 관련해 지출되는 비용의 경우 많고 적음을 떠나 언제나 현금 결제를 원칙으로 한다.

깡패 같은 차림새, 만화에서나 볼 법한 트렌치코트에 큰 뿔테안경을 쓰고 다니는 모습도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남씨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50대의 모습이다.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때로는 동년배 여성이나 강아지와 함께 다니기도 합니다."

이후 사기꾼 이씨가 몸을 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 주변부에서 숱한 탐문을 거쳤다. 드디어 정보 한 자락을 찾아냈다. 이씨가 A자동차회사의 검은색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인근 건물에 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후에도 차 안에서 오랜 잠복을 거친 뒤 주변을 돌아다녀야 했다. "사실 이 일의 대부분은 잠복입니다. 우리에게 강제권이 있어 정보를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꾸준히 버티는 것밖에 없죠."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을 거친 뒤 다음날 새벽5시, 결국 이씨의 차를 찾아냈다. 거주지 주차장의 구석진 곳에 떡하니 있었다. 이제 탑승자만 확인하면 된다. 탑승자에 관한 것을 의뢰인에게 넘겨 이씨가 맞는지만 확인하면 남씨의 일은 대충 끝난다. 의뢰인들은 남씨가 넘겨준 정보를 토대로 이씨와 소송 또는 합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남씨가 사립탐정 업계에 들어선 지도 10년이 됐다. 그동안 많은 사건을 다뤘다. "산업 스파이, 재벌가와 관련된 사건, 그리고 유명 연예인의 죽음과 관련된 일도 겪어봤죠. 단 불륜 같은 개인사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단 뒤 다른 이성을 만나는 장면을 포착해 의뢰인에게 알리는 업무는 맡지 않는다는 게 그의 원칙 중 하나다.

남씨가 실종자를 찾을 때는 보통 3단계를 거친다. 우선 인터넷과 각종 문헌을 뒤진다. 자료조사를 토대로 한 주변탐문이 2단계다. 현장에서 건져 올린 정보를 기존 자료들과 연결해 마지막 본격추격 단계로 나선다. 물론 이것만으로 사라진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과정마다의 상세한 방법에 대해 남씨는 말을 아꼈다. "때로는 공식적이지 않은 루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고만 귀띔했다.



민간조사업, 즉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엄밀히 말해 국내에서는 아직 불법이다. 대한민국 현행법으로는 일반인이 타인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미행하는 행위 등을 할 수 없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40조에는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사생활 등을 조사하는 일이 금지돼 있다. '탐정'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것 또한 안 된다. 이에 불법 흥신소, 불법 심부름센터 등의 별칭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지난해 고용노동부 등이 민간조사업을 신직업군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처럼 민간조사업에 대한 제도화 및 합법화를 요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이와 관련해 입법 추진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는 등 또다시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현행 신용정보법은 1961년 제정된 '흥신업단속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법은 1960년대 일본에서 흥신업종이 넘어오며 제정됐다. 흥신업의 폐해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고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어 후신인 신용정보법이 생겨난 것이다. 이로써 국내에서는 흥신업을 인정하지 않게 됐지만 민간조사 관계자 등은 사실정보만 수집하고 있다며 제도화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제도화의 시초는 1999년 하순봉 의원이 공인탐정에 관한 법률을 만들면서다. 하지만 이 법안은 발의조차 못된 채 회기를 넘겨 폐기됐다. 이후 2005년 이상배 의원이 민간조사업법을 발의한 후 10여년 동안 관련 법안은 수차례 논의만 오갔을 뿐 진척되지 못했다. 현 19대 국회에서도 윤재옥 의원이 '경비업법 전면개정안'을, 송영근 의원이 민간조사업에 관한 법률을 각각 제출한 상태다.

민간조사업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렇다. 증거수집, 실종자 찾기 등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국가가 모든 사례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간조사원이 필요한데 합법적인 영역에서 안전한 서비스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민간조사 제도를 양성화했을 때 오히려 사생활 침해는 사라지게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장은 "증거재판주의 원칙에서 불법 취득한 정보는 증거능력을 상실하는데 사생활 침해 같은 불법으로 증거를 모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도 "민간조사업이 입법화될 경우 특정업체들의 불법 사생활침해 행위는 경쟁업체들의 견제가 이뤄지면서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만 인정되지 않는다"며 "물론 외국에 있다고 해서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선진국에서 채택한 제도라면 우리도 한번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찬성론자들은 고용창출 효과라는 근거도 들이댄다. 2013년 경찰청으로부터 장현석 등이 용역 연구한 '민간조사 제도 법제화 필요성과 바람직한 도입방안'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를 4,900만명으로 가정했을 때 이 중 1만5,680명이 민간조사원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조2,724억원의 매출액을 창출하게 된다고 연구팀은 논문에서 밝혔다.

하지만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가장 강력한 논리는 역시 사생활침해 논란이다. 특히 대한변호사협회를 필두로 한 법조인들이 이 같은 근거로 반대 입장을 강하게 펼친다. 이효은 대한변협 대변인(변호사)은 "현재 음성적 활동을 하는 흥신소를 국가가 인정하면 사생활 침해는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민간조사업은 본질적으로 사생활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를 국가가 인정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2013년 경찰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경찰에 적발된 심부름센터의 범죄 유형은 '불법 사생활 조사' 부분이 68%로 가장 많았다.

논쟁은 이뿐만이 아니다. 민간조사업을 추진하려는 이들도 의견차이를 보인다. 즉 민간조사업을 법제화한다고 했을 때 어느 기관에서 지도감독을 할지도 논쟁거리다. 이는 경찰청과 법무부가 갈등하는 구도인데 현재 국무조정실에서 이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한 관계자는 "일부에서 법무부가 인허가권을 가지고 경찰이 관리 감독을 맡게 되는 정부조정안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워낙 입장차가 크다 보니 계속 협의를 진행해나가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결국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사립탐정 제도는 10여년 째 같은 논리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내 한 대학의 법학과 교수는 "모든 제도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며 사립탐정제도 마찬가지"라며 "다만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떠나 어떤 것이 결국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권익을 증대시키는 길이 될지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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