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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백치 백지'

무시·따돌림 당하는 '바보'에 대한 성찰


이 세상 어느 땅이든,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는 '경계'가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 받는 자, 그리고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우리는 비정상적인 사람, 정신적으로 뭔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바보는 한국이나 일본, 미국이나 러시아 등 인간이 한 데 모여 삶을 꾸리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의해 무시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며 온갖 수모를 겪는다. 바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연극 무대에서 펼쳐진다. 연극 '백치 백지'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The Idiot)'를 원작으로 한다. 간질을 앓고 형편마저 궁해 이리저리 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뮈시킨 공작이 나스타시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연적이던 로고진이 결국 나스타시아를 살해한다는 게 줄거리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키는 뮈시킨 공작은 맑고 순수한 시선으로 창녀 나스타시아를 비롯한 세상사에 찌든 등장 인물들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이런 뮈시킨 공작의 모습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를 어루만지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묘한 여운을 준다. 이 작품은 한국의 혼을 불어넣는 독특한 연출로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에서 최우수연출상을 수상한 임형택 연출과 러시아에서 주목 받는 영화연출가 안드레이 세리바노프가 공동 연출했다. 그래서인지 원작에 한국의 정서를 덧댄 실험적인 접근과 무대 연출법이 눈길을 끈다. 뮈시킨 공작이 요양차 머물렀다는 스위스에서 만났던 어느 바보 이야기가 삽입되면서 원작에는 없는 한국의 백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느 동네에나 한 명쯤 있을 법한 바보 '백지(백치의 이름)'는 한없이 순수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모진 차별을 받다가 결국 아저씨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가 모티브로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을 뿐 그 어떤 욕심도 갖지 않았던 백지, 몸을 팔아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누구보다 맑은 영혼을 갈구하는 나스타시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면서 관객의 감정선은 뮈시킨 공작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그리고 바보 백지나 창녀 나스타시아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낀다. 이번 작품의 특징은 연극이지만 춤과 음악 등의 비중을 높이면서 마치 음악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승환 밴드의 기타를 10년 넘게 맡고 있는 윤경로가 밴드로 합류하고 가수 겸 작곡가 박정아가 작곡자 겸 연주자로 등장했으며 판소리 장원상을 받은 안이호가 백지의 소리를 대변한다. 하지만 나스타시아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호흡이 필요 이상 늘어지면서 관객의 몰입을 흐트러뜨리고, 극 중간에 삽입된 백지 이야기가 과장되거나 돌출된 장면으로 비춰질 수 있는 점은 옥의 티다. 2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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