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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정권과 정부

몇 해 전 어느 모임에서 모 경제부처 차관으로부터 들은 강의가 생각난다. 고위 공직자의 강의는 대개 주요정책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당위성 등을 설명하고 그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과 국민의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날 강의는 달랐다. 교육을 비롯해 경쟁력이 없는 서비스분야에 대해 규제개혁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관련 부처들이 협조를 안해서 못해 먹겠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어떻게 하든 국가경쟁력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들이 확보하고 있는 규제와 권한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일부 부처들의 이기적 행태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 주된 메시지였다. 이날 강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약의 단골메뉴인 규제완화를 가로막는 진짜 걸림돌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 공직자조차 한계와 무력감을 느낄 정도로 부처이기주의가 심각하고 그래서 경쟁력 강화와 선진화 같은 시대적 과제를 추진하지 못할 정도라면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으로 불리면서 마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조직처럼 비춰지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개의 힘센 소정부들이 팽팽이 맞서 있는 군웅할거식 조직이라는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항상 지리멸렬 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등의 경우 과거 개발연대 못지않은 강력한 추진력이 발휘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조직이 크게 바뀌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우선 부총리제를 없애고 부처 수도 줄여 대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대의 정책조정기능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부처들이 잔뜩 긴장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특히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거나 부처 기능이 대폭 약화되는 부처들은 비상일 것으로 짐작된다. 새 정부의 이념과 공약, 정책노선 그리고 여건변화에 맞춰 정부조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최근 정부부처가 지나치게 세분화되면서 비대해졌고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여기에서 통합조정기능이 약화되다 보니 한 번 만들어지면 어떻게든 조직을 늘려가는 파킨슨의 법칙이 통제받지 않고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이 중요하다며 여성부를 만들고 교육이 중요하다며 부총리로 격상시키고 중소기업이 중요하다며 기존 기구와는 별도의 특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덧씌우는 일이 되풀이 돼온 결과인 셈이다. 정부가 정권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돼온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부처들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게 된다. 어제까지 힘있던 부처가 하루 아침에 별 볼 일 없는 부처로 전락하고 주목을 못받던 곳이 다시 힘있는 부처로 부활하면서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역할이 잘 확립된 선진국에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부 정치적 임명직을 제외하고 공직사회 전체가 들썩이거나 동요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 공무원 전체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변화에 휩싸인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도 있지만 최고통치자와 실세들이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리 풍토에서 일단 위에서 국정방향ㆍ정책기조와 목표등이 정해지면 그것을 위해 총동원되는 것이 한국의 관료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큰 변화없이 지속가능한 정부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바탕으로 국정과 정책방향을 옳게 잡고 공무원들이 소신과 책임감을 갖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규제개혁이 안된다고 불만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런 법규를 만들어 준 국회 책임이 더 크다. 여전히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우수한 인재집단이다. 뿌리깊은 관료주의ㆍ부처이기주의 등으로 비난을 사기도 하지만 어떤 과제가 주어지느냐에 따라 그들의 능력은 국가발전을 위해 활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최고통치자의 정부운용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왕 정부를 수술하기로 했다면 중앙부처 조직개편만으로 부족하다. 수많은 공공기관과 자치단체ㆍ지방공기업까지 보다 큰 안목에서 개혁의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가령 과중한 세금이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혈세의 60% 가까이를 쓰고 있는 두 단계의 자치단체들도 당연히 개혁리스트에 올라야 한다. 긴 안목에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정부조직을 만들고 국가발전과 국민을 위한 공공개혁을 이뤄내는 것이 새 정부의 첫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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