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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의 두 얼굴


미국은 피부색ㆍ인종ㆍ나이ㆍ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해 지난 1960년대부터 임금차별금지법ㆍ인종차별금지법 등 정교한 법망을 갖춰왔다. 또 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다양한 문화 인종이 뒤섞여 있는 국가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이 행해질 경우, 특히 그것이 피부색과 인종에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LA 폭동 등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뿌리 깊다. 비무장한 흑인 소년을 총격으로 살해하고도 무죄 판결을 받아낸 히스패닉계 백인 조지 지머먼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는 판결이 내려진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부 시위에서는 폭력적인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고 이번주 말인 20일에는 미국 내 100여개 도시에서 추가 기소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다.

흑인들은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무죄 판결뿐 아니라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도 '인종차별'이 깔려 있다는 점에 분노한다. 자경단인 지머먼은 지난해 2월 플로리다주 샌퍼드의 편의점에서 사탕을 사서 나오던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과 다툼을 벌이던 과정에서 총을 쏴 소년을 숨지게 했다. 지머먼은 흑인 소년이 먼저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바닥에 넘어뜨린 뒤 살해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지머먼 자신이었다. 백인 부자동네에 흑인 소년이 나타나자 지머먼은 그를 미행했고 이것이 다툼으로 이어졌다. 지머먼은 아마도 백인 부자동네를 어슬렁거리는 흑인은 잠재적 범죄자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지머먼에 대한 판결 이후 흑인사회가 술렁이자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배심원들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히는 등 사건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섰지만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판결이 내려지기 하루 전인 지난 12일. 샌프란시스코의 지역방송인 KTVU는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에서 확인한 것이라며 아시아나 사고 여객기 조종사들의 이름을 왜곡 비하하는 보도를 내보내 한국의 공분을 샀다. KTVU는 NTSB 인턴직원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인터넷 유머였던 섬팅 웡(Sum Ting Wong), 위 투로(Wi Tu Lo), 뱅딩아우(Bang Ding Ow)를 실제 조종사의 이름으로 내보냈다고 해명했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명백한 비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고 직후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던 승무원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웠던 다른 미 주류 언론들도 군대ㆍ위계질서ㆍ한국어 등 한국의 문화를 사고의 배후로 지목하고 한국 조종사들의 실력을 폄하하는 내용의 보도를 앞다퉈 내보내고 있다. 일부 맞는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고와 직접적인 연관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사고 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NTSB 역시 보잉사를 감싸고 돌면서 노골적으로 조종사 과실로 사고 원인을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겉으로는 한류에 찬사를 보내는 미 주류 사회가 속으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이곳에서 만나는 많은 한인 교민들 역시 이번 샌프란시스코 지역방송의 인종 비하 보도와 미 언론들의 한국 때리기에 씁쓸함을 넘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당한 차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합당한 권익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다음달이면 흑인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남긴 '워싱턴 대행진'이 5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머먼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이번주 말 미 전역에서의 시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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