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술잡지 아트뉴스는 세계 200대 미술품 컬렉터를 발표했다. 상위 10대 수집가에는 명품 제조업체 프랑스 LVMH 최고경영자 베르나르 아르노 부부, 뭉크의 '절규'를 구입해 유명해진 헤지펀드 거물 레온 블랙 부부, 화장품 업체 에스티로더의 로널드 로더 부부 등이 포함됐다.
단순히 국민소득 크기만으로 지구촌에서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쿠웨이트ㆍ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 오일로 위세를 부리지만 선진국으로 대접받지는 못하고 있다. 문화융성을 통해 국민이 보다 품위 있는 문화적 삶을 향유하고 나라의 국격이 높아질 때 그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선진국이 미술품 수집을 적극 권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대기업 최고경영자나 재력가가 유명 작품을 수집해 국가나 공공미술관에 기증하거나 개인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을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존경하고 있다. 근대미술관(MoMA)이나 구겐하임미술관 없는 뉴욕시는 상상할 수 없다. 테이트모던이나 사치갤러리를 보지 않고는 전후 현대미술과 영국의 젊은 작가(YBAㆍYoung British Artist) 운동을 이해할 수 없다.
지난 세기 우리나라 최대의 컬렉터는 간송 전형필과 호암 이병철이었다. 해방 전에는 간송이, 해방 이후에는 호암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해왔다.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의 반입이나 지하시장에 사장된 희귀작품의 발굴은 간송과 호암의 문화 사랑과 높은 안목 없이는 불가능했다. 간송은 간송미술관을 만들어 겸재 정선, 완당 김정희, 혜원 신윤복 등 많은 고미술품을 지켜왔다. 호암은 1965년 삼성미술문화재단, 1982년 호암미술관, 1995년 호암아트홀 설립을 통해 문화예술 창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만6,000점에 달하는 소장품은 질과 양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에는 중국이 세계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11년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세계 10대 작가 명단에 첸이페이, 쩡판즈 등 중국 작가가 다섯명이 포함됐다. 중국의 큰 손은 중화주의 색채가 강해 중국작가 작품을 대거 구입해 중국 작가의 작품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 2011년 중국의 춘계 경매에서 천이페이의 대표작 '산지풍'이 138억원으로 중국 유화 사상 최고가로 낙찰됐다. 고기, 가면 시리즈로 유명한 쩡판즈는 장 미셀 바스키아, 제프 쿤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가 됐다. 웨민쥔, 장샤오강 등 소위 4대천왕은 미술시장의 블루칩이 됐다. 작고 작가 장다첸, 차바이스도 누계 경매 낙찰액이 4.5억~5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가고시안, 페이스, 메리분 갤러리 등 세계 최대 화랑들이 홍콩ㆍ베이징ㆍ상하이에 속속 모여들고 있다. 문화 권력의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 권력이 곧 국력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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