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뭇없이 사라져간 삼성자동차 빅딜. 이대원 삼성차 부회장(오른쪽)은 6월30일 끝내 법정관리를 선언하고 말았다. 김 회장의 신화는 이렇게 사라졌다. /서울경제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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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불씨마저 꺼지고…
이건희와 김우중. 김 회장은 '승지원 담판' 을 통해 마지막 회생의 불씨를 살려 보려 했지만 헛된 꿈이었다
/서울경제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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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빅딜2: 통한(痛恨)의 눈물
이건희, 끝내 김우중의 손을 뿌리치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가뭇없이 사라져간 삼성자동차 빅딜. 이대원 삼성차 부회장(오른쪽)은 6월30일 끝내 법정관리를 선언하고 말았다. 김 회장의 신화는 이렇게 사라졌다. /서울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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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전체보기]
ㆍ김우중-이건희 '승지원 최종담판' 이후
삼성측 여신회수 중단으로 자금 숨통
ㆍ대우전자 빅딜문제는 빠져 '비극 씨앗'
ㆍ삼성車가치·부채놓고 지루한 공방끝
삼성 "법정관리로 후환 없애자" 전격결정
ㆍ金회장 '백의종군' 불구 회생 꿈 물거품
⇒(2막5장에서 계속)
3월22일 오후 6시를 조금 넘어선 시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영빈관인 한남동 승지원에 ‘손님’이 찾아왔다. 김우중 회장이었다. 그룹 모회사인 ㈜대우의 창립 기념식을 마친 직후였다. 두 달만의 만남, 김 회장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피를 말리는 담판, 당초 모임의 주인공은 4명이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중매 역할을 맡기로 돼 있었다. 물론 ‘비공개’가 약속. 그러나 비밀은 낮에 깨졌다. 정주호 대우 구조조정본부 사장이 느닷없이 회동 계획을 알리고 나선 것. 다급한 대우,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보장받는 모습을 대외에 알리고 싶어했다.
회동사실이 공개된 이상, 두 장관은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관료들에게 빅딜은 ‘그들(재계)만의 리그’라는 형식이 중요했다. 책임을 피히기 위해서였다.
1시간 50분 동안 이어진 만남. 무거운 시간이 흘러갔다. 중매인 없이 얘기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대우 계열사 자금을 맡았던 K씨의 발언이 관심을 끈다.
“회동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왜 한남동까지 찾아갔겠습니까. 연배로도 김 회장이 위인데…. 삼성이 빨아간 자금을 뱉어내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
유동성, 한마디로 말해 현금이 말라가던 상황에서도 삼성의 여신회수는 계속 됐던 것이다. 김 회장은 화가 나 있었다.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 앉았다. 이 회장은 못내 ‘OK’사인을 냈다.
마지막 불씨마저 꺼지고…
이건희와 김우중. 김 회장은 '승지원 담판' 을 통해 마지막 회생의 불씨를 살려 보려 했지만 헛된 꿈이었다
/서울경제 DB
회동이 끝나갈 무렵, 메시지가 전달됐다. 2차 회동을 갖자는 정부측 메시지였다. 두 회장은 은밀히 승지원을 빠져나갔다. 오후 8시를 넘은 시각. 장소는 김 회장의 개인 사저인 힐튼호텔 팬트하우스였다.
9시10분쯤. 이 장관과 이 위원장이 도착했다. 기나긴 협상, 2시간 이상이 흘러갔다. 참석자들의 숨소리가 고르지 못했다. 밤 11시30분. 이 회장의 입에서 먼저 말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으로 합의문을 만듭시다.”
빅딜 잠정 합의서가 만들어졌다. 쟁점인 SM5 ‘(삼성의)책임 판매’문제는 양측 주장의 중간인 1만5,000대에서 결정됐다. 인기가 없었던 SM5의 판매를 일정량 삼성이 책임진다는 합의서였다. 협상의 종료 시한은 4월말이었다.
4시간 10분의 대 담판, 그러나 대우에게는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합의문에서 대우전자의 빅딜 얘기는 쏙 빠졌다.
전자를 통해 한 몫을 챙기려 했던 김 회장. 계획은 일단 무산됐지만, 담판을 통해 겉으로나마 감정의 앙금을 삭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대우 자금 담당자의 발언. “이상하리만치 삼성측 반응이 조용해졌어요. 오랜만에 삼성생명으로부터 자금을 풀어주겠다는 제의가 오더군요.”
그랬다. 합의 다음날부터 자금이 되돌아 오기 시작했다. 삼성이 회수해간 것에 비하면 턱없이 작았지만, 대우로선 ‘가뭄에 단비’였다.
물론 그냥 돈을 주었을 리는 만무했다. 삼성과 LG가 벌이던 데이콤 지분 전쟁. 윤활유를 받은 대우는 삼성의 원군이 돼 있었다. 대우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삼성에 팔아 버린 것이다. 반도체 빅딜로 경영권을 현대에 내준 뒤 데이콤 인수에 사활을 걸었던 LG. 구본무 회장은 서운했지만, 김 회장은 그만큼 급했다.
‘3ㆍ22 담판’후 물 흐르듯 전개될 것으로 보였던 빅딜 게임. 양측은 그러나 삼성차 가치와 부채처리 방안을 놓고 하염없이 시간만 끌었다. 김 회장은 삼성차를 인수하는데 필요한 ‘분명한 대가’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1조원+∝’, 삼성측에선 기도 안 찬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적어도 부산 공장과 땅만은 값어치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기업 가치는 그나마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작 문제는 4조원이 넘는 삼성차의 부채였다. 방법은 두가지, 삼성 계열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주든지 아니면 이 회장이 개인재산을 꺼내는 일뿐이었다. 계열사들이 부담을 떠안는 것은 ‘시대’가 용납하지 않았다. 주주들의 소송을 걸고 들어오면 어쩔 것인가. 해서 금감위가 대안을 제시하고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금융 계열사들이 회사채 매입 형태로 삼성차에 빌려준 1조2,000억원을 자체 처리한다. 다음은 부채를 대우차에 넘기되 삼성 계열사들이 대우차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인수하거나 출자전환한다. 그런 방식으로 2조원을 지원하면 된다.”
이 방안도 삼성 계열사들에 부담을 지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사재출연’만이 대안으로 남았다. 사재출연론은 5월 들어 강도를 더해갔다. 당시 금감위 관계자의 발언.
“오너의 사재출연은 아무래도 상징적인 얘기겠지요. 자본주의에서 회사가 망했다고 그 빚을 오너 한 사람이 책임진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삼성차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미 사회적 이슈로 너무 커진 상태였습니다. ”
5월 중순, 수면 아래에 있던 사재 출연론은 ‘3,000억~5,000억원’이라는 규모까지 나오며 쟁점으로 떠올랐다. 삼성 사령탑인 구조본이 바쁘게 움직였다. 회장에 대한 ‘불경죄’인줄 뻔히 알았지만, 난마처럼 얽힌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사재 출연론도 벽에 부닥쳤다. 삼성은 회장의 사재를 협력업체 피해를 보상해주는데 우선 사용하고자 했다. 4조원 넘는 부채를 제대로 해결할 자신도 없었다. 대우에 얼마나 추가로 돈이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회의론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법정관리, 끔찍한 시나리오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법정관리에 넣어 후환을 없애 버리자는 주장이었다. 치열한 힘겨루기, 벼랑 끝 싸움이 시작됐다. 정부는 삼성에 대한 최후의 압박에 들어갔다. 빅딜의 사장(死藏)은 곧 대우의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요지부동, 삼성은 냉정했다.
6월5일. 강봉균 수석이 재경부 장관으로 옮기자 마자 경제장관들과 가진 첫 간담회. 표정은 비장했다. “빅딜 협상시한은 주말(12일)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귀책사유가 있는 쪽에 제재를 가하겠다.”
최후 통첩. 반도체 빅딜 때 LG에 가해졌던 금융제재의 압박이 동원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LG와 달랐다. 돈을 움켜쥔 삼성에게 제재를 해 봐야 효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정부가 머뭇거리는 순간, 삼성이 맞받아치고 나섰다. 실행될 것이라고 믿지 않았던 최후의 승부수를 꺼냈다. 칼은 정부를 향했지만, 피를 흘리는 쪽은 대우였다.
협상 종결을 하루 앞둔 11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초여름이었嗤?날씨는 아침부터 뜨거웠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재경부 장관 집무실에 들어선 낮선 얼굴의 민간인. 이학수 삼성 구조본부장이었다. “법정관리에 넣어야 겠습니다.”
강 장관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돌려 보냈다. 이 본부장이 곧바로 향한 곳은 여의도 금감위. 10시30분이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법정관리에 넣겠습니다. 대신 부채 4조원 중 2조는 떠안겠습니다. 나머지도 방법을 만들겠습니다.”
이 위원장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눈은 멀리 국회 의사당에 향해 있었다. 이 위원장은 무거운 톤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정 그리하고 싶으면 책임은 삼성이 져야 합니다. 법정관리에 가려면 부채 해결책도 내놓으세요. 부산경제에 대한 해결책도 생각하고….”
달랬지만 소용이 없었다. 삼성은 게임을 접은 상황이었다. 관심은 이제 부채를 처리할 방법뿐이었다. 구조본은 이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마지막 결정은 삼성 원로회의의 몫이었다. 두고두고 골치 아플 삼성생명 주식‘2조8,000억원’의 해법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회장은 아무 말 없이 허락했다.
미련이 남았을까. 6월25일 오후. 이헌재 위원장은 승지원을 찾았다. 이 회장의 의중을 마지막으로 읽어보기 위한 것이었다. 답변은 같았다. 30여분만에 자리를 떴다.
6월30일 오후 1시. 태평로 삼성 본관 25층에 이대원 삼성차 부회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정부와 삼성은 7월1일을 발표 ‘D-데이’로 잡았지만, 사실이 누설되자 날짜를 앞당겼다.)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 채권단은 생명 주식을 갖게 되고 생명이 조만간 상장되면 주식을 매각해 손실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김 회장이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간직했던 생존의 불씨는 이렇게 꺼졌다. 삼성이 법정관리를 발표歐?직전 소집한 사장단 회의. 삼성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 회장은 국내외 사장단 50명 전원의 사표를 받았다. 얼굴에선 비장감이 풍겨 나왔다.
“본인은 자동차에만 전념하며 구조조정이 완결되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습니다.”
‘백의종군의 각오’, 하지만 게임은 끝난 상황이었다. 삼성의 마수걸이에 허약하게 무너진 총수의 다짐, 그의 신화는 그렇게 몰락해갔다.
입력시간 : 2005/06/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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