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미국 예일대는 에이즈 치료제인 제리트(Zerit)의 특허 로열티를 기반으로 1억달러의 투자유치를 받아내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는 지식재산(IP)을 기초자산으로 증권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담보물권이나 눈에 보이는 자산이 아닌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처럼 해외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지적재산의 금융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이뤄져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미래의 특허료 수입을 근거로 한국산업은행(KDB)으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특허료 유동화에 성공했다고 6일 밝혔다. 국내 정부연구기관이 IP 금융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TRI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10억원 규모의 특허기술료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계약은 특히 지난해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지식재산금융 활성화 방안'을 실현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IP 로열티 유동화는 기존 IP 담보대출과는 차원이 다르고 또 특허권을 가진 기업이 자금확보를 위해 지식재산권을 특정 기업에 매각한 뒤 로열티를 내고 특허를 사용하는 방식인 '세일즈 앤드 라이선스 백'과도 다른 투자기법이어서 앞으로 국내 연구기관의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산업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ETRI는 이번 투자 유치금을 해외 특허 출원과 특허풀 가입, 특허침해 대응 등 핵심 특허의 권리 확보에 활용할 계획이다. ETRI는 보유하고 있는 알짜배기 특허인 국제표준특허 376건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로 투자할 예정이다. 투자가 가능한 대표적인 기술로는 ETRI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롱텀에볼루션(LTE)과 와이파이(WiFi), 고효율 비디오 코딩(HEVC) 기술 등이 있다.
ETRI는 이번 투자를 바탕으로 5년간 1,000억원 규모의 특허기술료 수입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출연 연구원이 보유한 지식재산의 활용가치를 인정받고 선진 IP 금융 방식 도입의 물꼬를 튼 모범사례로서 모든 출연연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흥남 ETRI 원장은 "ETRI 특허 로열티 유동화 계약 사례가 국내 중소기업에까지 널리 확대돼 IP 금융 생태계 조성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이 가속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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