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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하루 한가지씩 버려야…" 한평생 청빈한 삶 설파

'무소유' 법정 스님 입적<br>타 종교와 벽 허무는데도 큰 발자취<br>4·19등 겪으며 유신철폐운동 참여도<br>76년 산문집 '무소유'로 대중 사랑 받아

입적한 법정(法頂) 스님은 불교계의 큰스님이다. 탁월한 문장력으로 적어내려간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고 불자나 스님들 사이에서는 지난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스님이다.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번 지내지 않았다. 스님은 또 다른 종교와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 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고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 법회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초대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하기도 했다.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한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55년 마침내 입산출가를 결심하고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집을 나섰고 서울의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1888~1966ㆍ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종정) 스님을 만나 대화한 뒤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 그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땔감을 담당하는 부목(負木)부터 시작해 행자생활을 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4ㆍ19와 5ㆍ16을 겪은 스님은 1960년대 말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운허 스님 등과 함께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 하기도 했다. 이 시절 함석헌ㆍ장준하ㆍ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고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뒤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 다시 걸망을 짊어졌다.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며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냈고 그 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그곳마저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은 계속했다. 특히 1996년 고급 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1999년 작고) 할머니에게 기부 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했고 1년에 여러 차례 정기 법문을 해왔다. 법정 스님은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정기 법문은 계속하면서 시대의 잘못은 날카롭게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을 위로했으며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우리 출판계 역사에 기록될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남겼다. 스님은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수도생활에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은 조계종단과 사회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법정 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고 1994년부터는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어왔다. 주위 사람들은 건강이 좋지 않은 스님이 지난해 겨울을 제주도에서 보냈다가 건강 상태가 더욱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계속해서 "강원도 오두막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법정의 '무소유'

"태어날때 가지고 온것 없고 하직할때 가져가는 것 없다"
법정 스님과 연관돼 떠오르는 단어는 '무소유'다. 법정 스님은 지난 1976년 출간한 산문집 '무소유(범우사 펴냄)'를 비롯해 수십권의 책에서 한결같이 무소유의 정신을 설파했다. 그가 말한 '무소유'는 불교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는 가르침에서 출발한다. 청빈을 일상에서 실천하라고 권한 스님의 글은 종교를 불문하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1년 쓴 글 '무소유'에는 법정 스님이 평생 수십권의 책을 통해 반복해 강조했던 무소유의 정신이 담겨 있다. 당시 3년째 난초 화분을 애지중지 길렀다는 스님은 장마 후 쏟아지는 햇볕 아래 화분을 놓고 왔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거처로 돌아간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의 집착을 뉘우친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것을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지를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무소유 철학은 수많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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