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경험하고도 전력수급 사정이 여전히 빠듯한 것을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기후에 목을 매야 할 처지라면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짓는 천수답과 다를 바 없다. 발전소 건설에 5~10년씩 걸려 전력수급 계획이 잘 맞아떨어지기 어렵고 전기요금이 싸서 수요 억제마저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해명이지만 어떤 이유를 대든 군색하기만 하다. 2년마다 짜는 장기 전력수급 계획의 부실에서 당국의 무능과 안이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하계 전력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9개 발전소의 계획정비를 가을로 연기한다고 한다. 그러나 제때 정비되지 않아 성수기인 여름철에 고장이라도 난다면 더 큰 일이다. 신고리 2호기를 비롯한 새 원전 2기가 차질 없이 6~7월에 가동되기를 학수고대해야 하는 실정이다. 전력기근은 건설 중인 발전소들이 완공되는 오는 2013년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서는 절전과 같은 수요관리를 강화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주 관계부처 합동회의를 거쳐 예년보다 앞당겨 하계 전력수급 비상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름철 전력 사용량의 50%를 차지하는 산업체의 휴가일정을 분산시킴으로써 전력수요가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발적 절전 참여기업을 확대하려면 인센티브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전력요금의 시간대별 차등부과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이번 여름을 잘 넘기는 것이 당면과제이지만 더 중요한 일은 해마다 이렇게 가슴 조마조마하는 일이 없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때마침 올해는 장기 전력수급 계획을 새로 수립하는 해이다. 발전능력 확충은 물론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같은 장기적이고 큰 틀의 전략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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