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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親서방정책 ‘잰걸음’

리비아와 서방세계의 밀착 속도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다. 리비아가 지난해 8월 로커비 사건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데 이어 12월 대량살상무기(WMD)를 무조건 포기한다고 선언해 어느 정도 예측은 됐지만 최근의 대 서방 외교행보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압델 라흐만 샬감 리비아 외무장관은 10일 1969년 무아마르 가다피 국가원수가 무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해 토니 블레어 총리 및 잭 스트로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샬감 장관은 회담에서 “리비아가 WMD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샬감 장관의 영국 방문은 영국과 리비아 관계가 본격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스트로 외무장관은 회담 후 “블레어 총리가 편리하고 빠른 시기에 리비아를 방문해 가다피 국가원수를 만날 계획”이라며 샬감 장관의 방문은 “양국 관계개선의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양국 정상의 만남은 여러 면에서 많은 의미를 가진다. 리비아와 영국은 1984년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관 부근에서 영국 경찰관 한 명이 피격 사망한 사건 이후 외교관계가 단절됐고 이후 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 팬암여객기 폭파사건으로 관계가 급전직하했다. 리비아가 서방으로부터 고립된 것은 영국정부와의 외교관계 단절이 시발점이 됐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따라서 두 정상의 만남은 99년 외교관계 복원 후에도 지지부진한 양국관계에 실질적인 교류의 장이 열리게 된다는 점과 함께 리비아가 본격적으로 서방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국무부도 이날 미국 외교관들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상주하고 있다고 공식 확인해 리비아의 대 서방 접근정책에 화답하고 나섰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리비아 정부가 WMD 해체를 위해 파견된 미국 대표단과 매우 좋은 관계에 있다”며 “리비아 정부도 조만간 워싱턴에 외교대표단을 파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17년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대 리비아 경제제재가 아직 해제되지 않았으나 리비아의 WMD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리비아가 제외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가다피가 갖고 있던 국제적 악명에 대한 부담 때문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리비아 정부와 접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블레어 총리가 이 역을 대신 맡아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샬감 장관이 영국을 방문한 10일 트리폴리에서는 서방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가다피 국가원수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리비아는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 시절인 1911~41년 이탈리아에 점령 당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어 이날 정상회담은 각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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