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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에베레스트 주요 루트 개척 알피니즘의 전설 크리스 보닝턴 경

"정상에 오르면 연인과 사랑 나누는 기분"

크리스 보닝턴 경이 지난 5일 북한산에 올라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버그하우스

"정상에 오르면 연인과 사랑 나누는 기분" [리빙 앤 조이] 에베레스트 주요 루트 개척 알피니즘의 전설 크리스 보닝턴 경 크리스 보닝턴 경이 지난 5일 북한산에 올라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버그하우스 김면중 기자 whynot@sed.co.kr 관련기사 • [커버스토리] 뇌수의 분실 '다이어리' • [커버스토리] 다이어리 애호가 김영조씨 • 젖은 상태에서 각질 제거하지 마세요 • [강한남성] 표피 봉합하는 '특수포경술' • 에베레스트 루트 개척 크리스 보닝턴 경 • 미식가 유혹하는 '맛의 寶庫' 경북 맛 기행 >>리빙 앤
조이 기사 더보기 갈라진 두 길이 있었지.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네.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이렇게 읊었다. 프로스트 처럼 ‘가지 않은 길’만 추구했던 전설적인 산악인이 있다. 바로 영국의 산악인 크리스 보닝턴 경(卿)이다. 그는 지난 50여년간 남들이 한번도 가지 않은 미답봉(未踏峯)만 골라 도전해왔다. 이렇게 아무도 오르지 않은 험난한 산에 도전한다든지, 등반 자체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고 강렬한 정열로 산에 도전하는 태도를 ‘알피니즘’(Alpinism)이라고 한다. ‘알피니즘의 전설’이라 불리는 그가 산악 브랜드 ‘버그하우스(Berghaus)’의 한국 출시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그는 현재 버그하우스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살아있는 전설적인 산악인’ 보닝턴 경을 만나 그의 등산 철학을 들어봤다. -‘알피니즘의 전설’이라 불리는데요. 알피니즘이 뭔가요. ▦알피니즘이란 하나의 등반 스타일이라 할 수 있죠. 19세기 중반에 알파인 등산을 했던 유럽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생긴 이후 현재까지 발전을 거듭해왔죠. 사람들이 산을 처음 타기 시작할 때에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오직 본인의 짐만 가지고 정상까지 등반을 했겠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산을 오르는 게 알피니즘입니다. 산의 환경을 보존하면서 가장 도덕적인고 윤리적으로 하는 등반을 알파인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등반하게 되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요? ▦로프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로프로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냐고요? 물론 위험합니다. 하지만 원래 등산이란 리스크의 게임입니다. 능수능란한 등산가는 본인의 경험과 기술로 이런 리스크를 줄이죠. -어찌 보면 죽음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사실 내 친구들 중에도 목숨 잃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나도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등산입니다. -과연 생명을 걸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요?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습니다! 등산에는 위험과 리스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즐거운 면도 많습니다. 몸을 움직여 사용하는 기쁨, 산의 빼어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점, 동료간의 끈끈한 우정 등이 그것 입니다. 무엇보다 남들이 한번도 밟지 않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지요. -그렇게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데서 느끼는 희열이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스릴과 희열이 등산을 하는 데 자극제가 됩니다. 등반할 때 최고의 도전 과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철저히 계획하고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기술을 익힌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등반을 계속 하다 보면 이런 즐거움을 느낄 것입니다. 등반이란 분명히 엄청난 도전이지만 그만큼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기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분인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느끼는 희열과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 중 어떤 게 더 큰 희열을 주는지 말입니다. ▦정상을 정복했을 때와 아이를 가졌을 때 느끼는 기분 모두 세상에 둘도 없는 기쁨이죠. 하지만 좀 다른 차원인 것 같네요. 정상을 정복해서 느끼는 희열이란, 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해요. (웃음) -16세부터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등반을 시작한 건 언제 였나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전쟁 때문에 여행을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모님까지 이혼해 여행 다니기란 거의 불가능했어요. 홀어머니 밑에서 혼자 컸는데 어머니가 너무 바빠 할아버지가 계시는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게 됐어요. 그 때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근처 산으로 갔어요. 동네에 있는 ‘리틀 슈가 로프(Little sugar loap)’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산이었죠. 그게 내 산악 인생의 시작이었어요. 이후로 그 산을 자주 산에 갔어요. 그러다 우연히 암벽 등반 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암벽 등반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 때부터 ‘정말 내가 암벽등반을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암벽등반은 엄청난 근력이 필요하지요? ▦난 아무래도 타고난 산악인 인가봐요.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암벽등반을 시작한지 2~3년 만에 가장 어려운 코스를 정복했으니까요. -그때는 젊었으니까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73세인 현재도 여전히 산에 오르고 있잖아요. 체력적으로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60세 이전까지는 정말 활발하게 등반을 했었어요. 그 나이까진 내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등반만 도전했죠. 그러나 이후부터 분명히 스태미나와 유연성이 떨어졌어요. 물론 이후에도 꾸준히 등반을 하고 있어요. 그때처럼 험한 산을 오르지는 않지만요. 체력이 떨어진 걸 느낄 때마다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산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여전히 암벽등반을 할 정도라니 정말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드네요. 남들은 잘 모르는 자기만의 건강 관리 비결 몇 개만 귀띔해주세요. ▦열정과 열의죠. 난 산과 인생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항상 혼신의 힘을 쏟아 붓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진짜 나이는 마음 속에 있죠. 젊지만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애늙은이들도 많습니다. 난 나이는 많지만 정신만큼은 웬만한 젊은이보다 더 젊다고 생각합니다. -50년 넘는 기간 동안 등정하면서 매번 성공만 하진 않았을 텐데요. 산악인으로 살면서 가장 큰 좌절을 겪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등반을 하며 정말 많은 친구를 잃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되면 참담한 기분이 듭니다. 무엇보다 그 비보를 그 친구의 가족들에게 전할 때 정말 괴롭습니다. -등반할 때 말고 삶을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원정을 나가는 것은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친구를 잃는 일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좀 더 수월합니다. 하지만 가족을 잃는 일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유가족들의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지요. 사실은 저도 아들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 애가 세 살일 때였어요. 그 당시에도 난 에콰도르에서 등반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지 6일이 지나서야 그 소식을 접했어요. 그것도 타국 땅에서요. -만약 가족들이 정말 위험한 산에 도전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도 전에 위험한 도전에 나설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만 결국 하고야 말았어요.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해요. 물론 걱정은 많이 되겠지만 조언과 격려로 성공적인 등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습니다. -너무 등반을 좋아해 가족들이 서운해 할 것 같습니다. ▦내 직업이 일반 샐러리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 샐러리맨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회사에 묶여 있어야 하잖아요. 저도 원정을 떠날 때도 있지만 집에 있을 경우에는 좀 더 집중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집안 일도 하고 아기 기저귀도 갈면서 가정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해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등산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그간 19번이나 히말라야에 등정했고 에베레스트 중에서도 가장 험준하다는 남서벽을 세계 최초로 등정하셨습니다. 그 동안 도전한 수많은 등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등정은 무엇인가요? ▦도전적인 면에서는 에버레스트 남서벽 타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당시 원정대를 이끌었거든요. 가장 즐거웠던 등반은 친구와 함께 인도 중앙 히말라야 산맥 부근에 있는 갱고트리(Gangotri)라는 곳을 등정했을 때지요. 그곳도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상당히 험준한 코스였는데, 코스가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어제 당신의 등산 철학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요. 당신 철학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손사래를 치며) 난 철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그저 등산을 사랑하고 즐길 뿐이죠. 등반의 리스크, 산의 아름다운 정경, 동료들과의 끈끈한 동료애를 즐깁니다. 굳이 철학이라고 할만한 게 있다면 우리보다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지금껏 등산으로 얻은 것들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식으로 돕고 있나요. ▦여러 자선단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청소년들이 산에서 인격 수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와 환경보호 단체 등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리더십이나 원정대 조직을 주제로 강연도 많이 하시잖아요. TV 프로그램이나 강연에서 주로 강조하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프로그램이나 강연회 측 요청에 따라 주제는 항상 달라지죠. 하지만 기업 강연을 할 때는 에베레스트 원정 이야기를 주로 하며 리더십과 팀워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한국에서는 대선이 있는데요. 어떤 리더십이 좋은 리더십인가요. ▦훌륭한 팀에는 항상 훌륭한 리더가 있기 마련입니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무엇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비전이 뚜렷하면 팀 구성원들이 그 비전을 공유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합심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조직력과 적재적소에 팀원들을 배치할 줄 아는 능력도 필수입니다. 그렇게 업무 분배를 하고 난 후에는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고 그들을 믿어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리더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리더가 진심으로 팀원들을 아끼고 배려해야 하죠. 용기도 필요합니다. 팀원들이 별로 반기지 않는 행동이나 발언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등산가뿐 아니라 14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로도 명성을 얻고 계신데요. 오지 탐험의 이야기를 엮은 ‘퀘스트’는 탐험 기록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현재 저술 중이거나 앞으로 저술하고자 하는 책이 있는지요. ▦지난 10년 동안 리더십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2~3년 후 출간할 예정인데 정확히 언제 마칠지는 잘 모르겠네요. 동료와 함께 준비 중이에요. 그 친구는 영국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비즈니스 관련 대목을 쓰고 내가 등산 관련 부분을 쓸 예정입니다. -어제 강연회 프리젠테이션에서 보여준 사진을 보니 사진 실력도 보통이 아니던데요. 직접 찍으신 건가요. ▦90% 정도는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어요. 60년대에는 영국에서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하기도 했죠. 기술도 중요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 구성이 아닌가 싶어요. 뷰파인더 안에 넣을 것은 넣고 뺄 것은 빼는 것 말이죠. 뷰파인더 내 피사물들 잘 배열하는 것 말이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의 산과 산악인에 대해 알았는지요. ▦한국 산악인에 대해서는 전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히말라야를 처음 정복한 산악인에 대해서는 기사로도 많이 접했죠. 1983년엔 네팔 카트만두의 한 바에서 엄홍길 대장을 만난 적도 있어요. 어제 북한산에서 엄 대장을 또 만났어요. 내가 알고 있기로 엄 대장도 나처럼 새로운 루트와 새 기법을 시도하는 산악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산입니다. 특히 암벽이 정말 멋집니다. 서울은 정말 복 받은 도시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이렇게 좋은 산이 둘러 쌓인 수도는 없습니다. -정말 서울이 전세계에서 등반하기 가장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세요? ▦수도 중에는 그렇습니다. 정말로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죠. 언제 또 한국에 오실 건가요. ▦2년 뒤에 또 한번 방문해 북한산은 물론 다른 산들도 찾고 싶습니다. 그때쯤엔 내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버그하우스가 한국에서 1등 산악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겠죠? (웃음) -당신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힐러리 경이 한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대답은 사절입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아까 다 이야기했는데 다시 한번 말씀 드리죠. 등반만큼 생생하게 육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레포츠는 드물어요. 리스크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입니다. 덤으로 아름다운 풍경도 만끽할 수 있고요. 함께 등반하는 동료들과 우정도 강해지고요. 무엇보다 난 경쟁심이 강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남들이 오르지 않은 산을 먼저 오르고자 했던 거죠. 지금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사그러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산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 항상 받는 질문이라 이제 지겹네요. (웃음) 산은 당연히 내 모든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에게 자그마한 선물 하나를 전했다. 전날 북한 개성에서 사온 인삼이었다. 그는 “집에 가서 내 마누라랑 나눠 먹어야겠다”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의 환한 미소는 73세 할아버지의 웃음이 아닌 5살 짜리 꼬마 아이의 그것이었다. 순수함이 듬뿍 묻어 있었다. ●크리스 보닝턴 경은 누구?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유명한 원정대장 중 한 명인 크리스 보닝턴 경(Sir. Chris Bonington)은 뛰어난 기술등반 능력과 천부적인 원정조직 능력으로 히말라야에서 가장 기술적인 어려움을 요하는 등반들을 이루어낸 주인공이다. 지난 1970년 안나푸르나 남벽과 197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은 등산 역사에 있어 큰 업적으로 평가 받는다. 1934년 런던 햄스테드에서 태어난 그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거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6세부터 암벽등반을 시작한 후 급성장해 이미 십대 때 정상급 수준에 도달했다. 보닝턴 경은 19차례나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여했고, 수 차례 스스로 원정대를 이끌었다. 에베레스트도 4차례나 등반했는데, 결국 50세인 1985년에 세계 최고봉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알프스를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거봉을 초등한 주인공도 바로 보닝턴 경이다. 안나푸르나 2봉을 비롯해 올드맨오브호이, 파타고니아의 페인 중앙봉, 창가방, 그린랜드의 빙하, 네팔의 드랑낙리 등을 최초로 등정했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명한 산악인일 뿐 아니라 감각 있는 프리랜서 작가이기도 하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초등기'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기'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기' '정복되지 않은 산, 중국 콩구르' 등 현재까지 총 14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이중 일부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도 지난 2004년 간행된 '퀘스트'와 '세계의 대탐험' 등이 번역.출간돼 있다. 현재 버그하우스의 명예회장인 보닝턴 경은 세계 곳곳에서 리더십과 원정대 조직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암벽등반 및 후배 발굴을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7/12/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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