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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2월 9일] 李兄, 왜 그랬소…
입력2010-02-08 14:30:50
수정
2010.02.08 14: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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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2월 9일] 李兄, 왜 그랬소…
채수종 (사회부장) sjchae@sed.co.kr
李兄, 왜 그랬소. 가족ㆍ친구ㆍ직장동료,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억겁의 인연을 남겨놓고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게 무엇이었소. 이형의 나이 이제 51세. 영원한 이별을 하기에는 너무 젊지 않소.
이형이 생을 마감한 지 보름이 다 돼가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럽소.
이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고 당시에는 선택된 사람들만 갈 수 있던 해외유학도 다녀왔지요. 그리고는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에서 부사장에 올랐어요. 그것도 40대 때 말이죠. 누가 봐도 '평범한 10만명을 먹여 살릴 비범한 대한민국의 인재'였습니다.
정상엔 아무것도 없었나요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모았죠. 우리나라에 1,200여명밖에 안 된다는 연봉 10억원의 주인공 아니었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강남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 살았죠.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주식만 80억원이 넘는다죠.
이 정도 조건이면 대한민국 상위 0.001% 범위에 들 겁니다. 직장인들의 롤모델로도 손색 없지요.
그런데, 왜 그랬소. 남들이 모두 바라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당신이 왜 그랬소. 일면식도 없는 당신의 죽음에 이처럼 가슴이 허허로운 것은 단지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이형.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컸습니까. 반도체 강국을 만든 당신의 열정이 오히려 당신의 목을 옥죄었습니까. 언제나 남보다 빠르게 움직이던 당신에게는 속도 조절이 그렇게 힘들었나요. 실패 한번 없이 승승장구해왔기에 넘어지는 방법을 몰랐나요.
살다 보면 넘어지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게 다반사 아닌가요. 아이는 2,000번을 넘어져야 걷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종이배를 물에 띄우려면 9번, 종이비행기를 하늘에 날리려 해도 9번을 접어야 하죠. 그저 펴려고만 하면 종이배도 종이비행기도 만들 수 없는 것이 이치죠.
이형은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글에서 업무 과다와 보직인사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지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을 이끄는 자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일반 직장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참기 힘들었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나는 이형이 그 정도 스트레스에 세상과의 이별을 결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형이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형의 삶의 궤적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하기 위해, 세계적 기업에서 신화를 만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당신을 강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 뒤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걸어온 길을 왜 포기했소.
혹, 가장 좋은 직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니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은 아닌가요.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책에서 주인공 애벌레가 동료 애벌레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정상에선 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는 "애벌레에서 나비가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강조했죠.
한마리 나비로 훨훨 날아가소서
나는 사는 것이 힘에 부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이 책을 읽습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 인생과 성공과 행복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죠. 이형도 이런 작은 '숨구멍'이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이형의 선택에 대해 이런저런 추론을 해봤지만,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군요.
이형이 왜 그렇게 급하게 떠나야 했는지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형이 '한 마리 나비가 돼 훨훨 날아갔다'고 생각을 정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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