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으로 비용절감과 눈앞의 수익 좇기에 급급해온 일본 기업들이 가파른 실적호조를 등에 업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도요타 등 자동차 업계는 올 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에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예고했고 전자기기 업체인 히타치는 내년 4월부터 시작되는 2016회계연도 이후 올해보다 30%가량 많은 5,000억엔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엔저 등에 힘입은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일 현재까지 경영계획을 공개한 주요 35개 기업들의 올 회계연도 예상 R&D 투자액이 전년 대비 6% 늘어나 총 2조7,500억엔(약 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고 8일 전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 투자가 얼어붙기 전인 지난 2007년과 비슷한 규모다. 일본 기업들은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라앉은 2010년 이후 얼어붙었던 R&D 투자를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회복세는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선 2013년부터다. 특히 엔화가치가 달러당 120엔 안팎에 정착하면서 지난해 수출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영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자동차와 전기전자·정밀산업 등 수출기업들이 장기 성장을 위해 공격적인 R&D 투자에 나서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대표 전자기기 업체인 히타치제작소의 경우 올 회계연도의 R&D 투자계획은 전년 대비 3% 늘어난 3,600억엔 수준이지만 2016회계연도에는 이를 30% 늘린 5,000억엔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반도체 관련 투자가 한창이던 1997년 이래 최대 규모다. 구체적으로는 철도·에너지 등 인프라 사업과 첨단 정보기술(IT)을 융합하는 신사업 개척을 위해 인공지능·센서·로봇 등에 대한 개발 투자비를 지금의 3배까지 늘릴 방침이다. 목표는 미 제너럴일렉트릭(GE)과 독일 지멘스 등 글로벌 경쟁사들로 이들 기업의 R&D 투자액(엔화 환산 기준)은 2014회계연도 기준으로 각각 6,300억엔과 5,500억엔에 달한다.
히타치가 중장기 투자에 이처럼 공격적인 목표를 내건 것은 가파른 실적호조 덕분이다. 14일 실적을 공개하는 히타치는 2014회계연도에 전년도 대비 10% 증가한 5,800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경신한 것으로 관측된다.
고지마 게이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3년간의 중기경영계획의 일환으로 2016회계연도부터는 매출액의 3.7% 수준인 R&D 투자비율을 4~5%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파나소닉도 올 회계연도에 전기차 관련 사업 등 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R&D 비용을 3% 늘려 4,700억엔을 투자할 계획이며 NEC는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 개발 등을 위해 전년비 8% 많은 1,450억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첨단기술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자동차 업계의 경우 올 회계연도의 R&D 투자가 역대 최대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1조엔이던 R&D 투자를 500억엔 늘릴 예정이며 마쓰다와 미쓰비시자동차 등도 두자릿수 증액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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