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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한국기업의 힘
입력2005-03-09 17:20:16
수정
2005.03.09 17:20:16
박시룡 <논설실장>
얼마 전 막을 내린 MBC 드라마 ‘영웅시대’는 불륜 같은 저질 플롯이 판치는 요즘 세태에 개발연대 스토리를 다룬 경제드라마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로서 가공적인 요소가 적지않았겠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치지도자와 1세대 기업인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적인 작품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로지 경제개발이라는 일념으로 정부와 기업이 마치 군사작전이라도 하듯 개발계획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한국주식회사’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요즘 잣대로 보면 말도 안되는 호통과 지시가 통하던 시절이었지만 개발연대 관료나 원로 기업인들에게는 상당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훗날 수많은 구조적인 문제와 모순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들의 열정과 도전 덕분에 우리 경제는 한때 세계경제의 우등생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고도성장을 거듭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들도 생겨났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조선ㆍ철강ㆍ자동차ㆍ전자ㆍ반도체 등 대부분의 주력산업들이 기반을 잡은 것도 이때였다.
환란시련 극복하고 화려하게 부활
그러나 무지막지한 개발연대식 성장제일주의의 대가는 컸다. 바로 외환위기였다. 경제주권의 상실을 계기로 한국경제와 기업들은 거의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걸어들어가게 됐다. 양적성장을 최우선시하는 개발연대의 패러다임은 해체되고 수익성과 투명성, 공정성, 성장과 분배의 조화와 같은 질 중심의 패러다임이 들어섰다.
한국경제는 ‘패거리 자본주의’로 폄하되면서 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글로벌스탠다드라는 새로운 잣대가 기업들을 재단했다. 특히 재벌등이 수난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대마불사 신화는 깨지고 30대그룹의 절반 이상이 도산하는 진통이 따랐다. 개발연대 패러다임과 그 결과물에 대한 일대 청산이 이뤄진 것이다. 당시 분위기로는 한국경제는 물론 한국기업은 거의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수십년간 몸에 배인 관행과 사고방식을 벗어던지고 완전히 다른 게임룰을 지키며 우수한 성적을 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은 외환위기에 따른 좌절과 시련을 이겨내고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순익 10조원을 돌파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이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뒤늦게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이 같은 성과를 올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연구와 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뉴스는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와 기업이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LCD 휴대폰 등 IT와 전자분야의 신제품 개발경쟁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발군을 실력을 발휘하면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기업이 빠지면 세계전자박람회가 안된다고 할 정도로 우리 기업의 몸값이 높아졌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자동차, 세계일류 철강업체 포스코등 많은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형편없이 구겨진 한국경제의 자존심을 기업들이 회복시키고 있는 셈이다.
기업인 사기 높이면 재도약 가능
이쯤 되면 한국기업과 기업인의 저력과 능력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특히 대기업에 대해 정경유착과 독과점 등에 의존하면서 빚으로 무모한 투자를 일삼고 수익성보다는 문어발식 확장과 덩치만 키운다는 개발연대식 선입견을 버릴 때가 됐다. 수익성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투자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자리잡아가고 있고 선진국 기업들을 따돌릴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도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여건에 맞춰 재빠르게 변신하는 한국기업의 높은 적응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여기에 개발연대처럼 기업과 기업인들의 드높은 의욕과 사기가 결합된다면 한국경제는 또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긴다. 최근 기업인들의 사기가 개발연대의 5분1 수준밖에 안된다는 조사결과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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