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실적 5조4000억, 16% 껑충… 주고객군 은퇴 가속에 시장 확대
세액공제 혜택 규모도 확 늘어… "13월의 폭탄 피하자" 문의 급증
시중銀, 수수료 등에 공략 가열
'베이비부머'의 은퇴 가속화로 퇴직연금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의 '개인퇴직계좌(IRP)' 유치전에 불이 붙었다. 지난해 세법개정을 통해 IRP의 세액공제 혜택이 늘어난 데다 '13월의 연말정산 폭탄'으로 절세가 화두가 되자 고객들이 관심도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IRP는 근로자가 퇴직급여 등을 자신 명의의 퇴직 계좌에 적립해 연금 등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은행들은 수수료 수익 확보 및 주거래 고객 유치를 위해 IRP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신한·우리·하나·KB국민·외환·산업·농협·기업은행 등 8개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IRP 적립금은 5조4,293억원으로 전년 동기(4조6,749억원) 대비 약 16% 수직 상승했다. 특히 국민(1조5,911억원)·신한(1조2,362억원)·우리(1조410억원)은행 등 3대 은행은 IRP 적립금이 지난해 말 기준 각각 1조원을 상회하는 등 유치에 매우 적극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기존까지 시중은행의 실적 경쟁 관전 포인트가 펀드·방카슈랑스였다면 올해에는 IRP 유치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장이 열렸다"면서 "국가적으로 장려하는 사업인 데다 퇴직연금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높아져 IRP 유치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IRP 유치 경쟁이 불붙은 이유 중 하나는 주요 고객군인 베이비부머의 은퇴 가속화에 있다. 1955~1963년생 베이비부머 세대는 약 710만명에 달한다. 그간 잠재 고객으로 분류되던 이들이 은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적립금이 은행별로 1조원이 넘는다는 얘기는 베이비부머가 은퇴 시 퇴직IRP를 만들어 퇴직금을 넣어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A은행의 개인 IRP 현황을 뜯어보면 적립IRP는 3만6,339계좌(약 56억원)인 데 반해 퇴직IRP는 12만2,986계좌(약 8,842억원)로 개설좌수만 약 3배, 액수로만 약 158배가량 차이가 난다. 퇴직IRP 계수가 높은 이유는 퇴직자의 자금 유치가 상대적으로 더 많고 규모도 크다는 말이다.
연말정산 관련 세법 개정도 IRP 경쟁을 뜨겁게 달구는 주된 이유다. 연금계좌 세액공제는 기존 400만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세법개정을 통해 IRP에 추가 300만원을 불입하면 최대 700만원까지 13.2%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부양가족이 없고 지출이 적어 연말정산 폭탄을 우려하는 고객들에게 활용도가 높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금저축과 IRP까지 가입해 연간 700만원을 불입하면 연말정산 시 92만4,000원까지 환급 받을 수 있다"면서 "올 초 연말정산 과정에서 유난히 세금 폭탄을 맞은 고객들이 많아 문의가 끊이질 않고 있으며 절세에 민감한 은행원들은 300만원을 가득 불입하고 있다. IRP는 세금 수난 시대, 저금리 시대에 필수 상품"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IRP 유치를 통해 수수료 수익 확대를 노리고 있다. B은행은 IRP에 예치된 1억원 이하 자산의 운용관리수수료에 대해 0.3%, 자산관리수수료에 대해 0.2%를 각각 취한다. 1억원 이상이면 0.28%, 0.18%를 가져간다.
또 IRP 유치를 통해 주거래은행 고객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IRP 가입 고객은 개인이 자산운용의 주체가 되는 만큼 회사에서 들어주는 퇴직연금 확정연금(DB)형 대비 주거래은행 고객으로 모셔올 확률이 높다"면서 "자연스레 방카슈랑스·펀드 판매 등 크로스셀링의 효율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다만 과열 경쟁 양상도 눈에 띈다. IRP 유치 실적을 은행 직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에 상당 부분 반영한 탓에 "계좌만 유치해달라"고 고객들에게 부탁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여전히 고객들이 IRP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적 압박에 세액공제라는 유인으로 고객들에게 유치를 권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계좌에 돈을 넣지 않는 조건으로 개설해달라고 사정을 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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