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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대책쓴약과 단약/박승 중앙대교수(송현칼럼)
입력1996-11-18 00:00:00
수정
1996.11.18 00:00:00
박승 기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은 세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난의 책임이 고비용 저능률이라는 우리 내부문제에 있음을 함축한다. 그래서 이번의 불황은 만성적 성격을 지닐 것이다. 불황의 골이 그리 깊지는 않지만 오래 갈 것이다.○양약은 입에 쓰다
이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정부는 이미 「경쟁력 10%높이기」대책을 세워 추진하고 있고 기업들도 제각기 경영대응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경기대응책을 마련함에 있어서는 근본치유책과 진통정책을 잘 구분하여 그 조화의 묘를 이루어야 한다.
근본치유책은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현 경제난의 근본원인에 과욕구·고비용·저능률에 있는 것이니 만큼 근본치유책은 욕구를 줄이고 더 근면저축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감량정책이다.
즉 가계는 임금을 자제하고 기업은 군살을 도려내고 정부는 긴축재정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자면 불황의 고통이 상당기간 지속해 주어야 한다. 실업의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의 임금자제나 도산의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의 기업군살빼기는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돈 풀어 금리인하
그래서 근본치유책은 쓴약이다. 고통은 당장 오고 치료효과는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인내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비인기품목이며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용기있는 정부만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당장 고통을 제거해 주는 진통정책이다. 고통을 덜어 주자면 돈을 풀어 주어야 하고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경기 부양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약은 단약이다. 이러한 정책은 당장 약효가 나타나기 때문에 인기도 있고 정부로서도 부담이 없지만 병인을 다스릴 수 없고 오히려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선거를 치러야 하는 개발도상국의 민주국가에서는 단약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경제발전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여러 논문들을 보면 개발도상국서는 민주적 선거가 있는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없는 나라보다 낮다는 연구결과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위기타개능력의 한계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진통제 자제해야
지난번 정부가 발표한 경기대책도 그 예외가 아니다. 고비용 저능률 구조에서 비롯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내놓은 대책은 제한된 정책수단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 알맹이는 본질적으로 단 약에 치우쳐 있다.
우선 수도권에 대기업의 공장증설을 확대 허용한 조치나 재벌기업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규제완화 조치등이 그렇다. 이러한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국가경제의 대계에 관한 것이므로 한때의 경기대책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예컨대 수도권의 과잉집중문제는 교통난·주택난·환경난·교육난·휴식공간 문제등을 결과하는 주범이며 이 문제는 우리경제의 백년앞을 볼 때 가장 아픈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기가 어렵다고 기업들의 불편을 일시적으로 덜어 주기 위해 그러한 근본문제를 훼손한다는 것은 감기를 다스리기 위해 간을 다치게 하는 약을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금리문제도 그렇다. 노임을 내리기 어려우면 금리라도 내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돈을 풀어 금리를 내리도록 한다는 방법이 문제이다. 돈을 풀면 일시적으로 금리는 내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올라서 금리는 더 오르게 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금리를 내리게 하려면 저축을 늘리고 투자를 줄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장기적인 금리의 수준을 조정하려면 저축과 투자를 조절해야 하고 일정한 수준위에서 금리를 그때그때 평준화하도록 할 때에만 통화조절로서 가능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쓴약과 단약이 다 같이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치유를 위한 쓴약을 중심으로 조제해야 한다. 단약은 병인제거에 상충되지 않는 범위에서, 그리고 쓴약의 충격과 부작용을 완화해주는 목적으로 배합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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