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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그림에 대한 큰 재주는 없지만 좋은 그림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분심이 없어진다. 맹추위와 눈이 천지를 뒤덮는 요즘 마음으로 보는 옛 사람의 그림은 조선시대 최북(崔北)이라는 화가가 그린 '풍설야귀인(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이다. 당나라 유장경의 오언시 '봉설숙부용산(逢雪宿芙蓉山)'의 내용인 '해 저물어 푸른 산은 멀고 날이 차가워 초가집은 초라한데 사립문 밖 개 짖는 소리 들리자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놓았다.

미국 유학시절 겨울 밤 옥수수를 수확한 휑한 벌판의 밤바람 소리가 잠을 설치게 할 때 이 그림은 오히려 삶에 대한 내 의지를 다져주는 좋은 벗이었다. 어린 동자를 데리고 지팡이를 진 채 밤길을 걸어오는 사람은 마치 인생의 한파를 견디며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을 연상시켜 삶의 고비와 마주칠 때마다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주곤 했다. 또 중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멈춰 서서'의 마지막 구절인 '잠자기 전에 몇 마일은 더 가야 한다'라는 시구(詩句)를 연상시켜 인생의 보편적 진실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되풀이한 시인의 삶을 동경했던 어릴 적 순수함마저 떠오르게 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단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보면 감히 어찌 인생을 얘기하는가 하실지 모르지만 인생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구도의 길이고 수행의 길이라는 생각도 든다.

관념적인 생각조차 이러한데 살면서 부딪히는 생계의 고단함, 자식을 낳고 길러야 하는 그 숙연한 고단함, 거기에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가는 데 있어 다가오는 세상의 온갖 풍파까지 견뎌내야 하는 일생은 얼마나 시리고 힘든가.



비록 정치 초년생이지만 춥고 긴 밤바람 속에서 선비 옆을 지키는 동자처럼 국민이 겪고 느끼는 현실의 고단함을 가슴으로 헤아려 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함께 걱정하며 걸어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삶은 힘들어도 여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새 정부는 국민과 함께 걸어갈 것이고 나 역시 그 대열의 끝에서라도 국민을 생각하며 뚜벅뚜벅 같이 걸어가고 싶다. 더 이상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 밤에 돌아와야 한다면 외롭지 않게 동행하는 정치, 그것이 새로운 정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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