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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가 너무 성급하게 마지막 카드까지 꺼내보였다. 명분과 실리를 얻겠다고 대타협안을 내놓았지만 자칫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까 걱정이다.” 최근 국가보안법 처리를 놓고 ‘기습상정’과 ‘연내 유보’라는 양동작전을 펼쳤던 당 지도부의 전략에 대해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이렇게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안 처리를 놓고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당 안팎의 좌우파로부터 반발이 증폭되고 있는데다 임시국회 소집마저 한나라당의 거부로 벽에 부딪치는 등 당이 처한 상황은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해 꺼내든 국보법이 거꾸로 여당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국보법 처리를 놓고 당내 강ㆍ온파의 노선투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정치연구회 소속 의원들은 국보법 연내처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참여정치연구회도 “(국보법 처리에 협력해준) 민주노동당에 미안하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의정연구센터의 이광재 의원은 8일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보법 연내처리 유보라는 양보를 한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다”며 지도부를 옹호했고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은 국보법 폐지당론 자체에 대한 재논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보법 등 개혁법안 처리를 유보하는 대가로 열리는 야합국회를 반대한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일단 임시국회 참여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임시국회 소집을 위해 동원됐던 대타협 카드 역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천 원내대표는 이날 “한나라당은 민생경제법안 800여건에 대한 처리도 거부하고, 국보법 토론도 거부하고 있는데 무슨 일을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임시국회 참여를 거듭 요구했다. 하지만 아쉬울 게 없는 한나라당은 임시국회 소집요구에 대해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비롯한 4대 입법을 단독처리하기 위한 용도”라고 거부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4개 국론분열법 날치기 장을 만들려는 계략이 분명하기 때문에 협조할 수 없다”고 했고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여당 단독으로 임시국회에서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결국 이 같은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 4대 개혁입법의 연내 처리가 무산되고 민생경제법안까지 동반 몰락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난국을 타개할만한 마땅한 묘수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국회 주변에서는 여당이 개혁입법을 양보하는 대신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금관리법 등 뉴딜관련법안 통과를 관철할 것이라는 막판 빅딜설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야당과의 타협을 통해 뒤늦게나마 임시국회 참여를 이끌어내는 등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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