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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89> 잘 읽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독해를 잘할 수 있나요?” 라고 묻는다면 기자는 ‘글을 제대로 읽으라’는 원칙적인 답변을 할 것이다. 글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글쓴이의 의도를 곡해하는 등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글 읽기 원칙’이 틀린 방법이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다. 잘 모르겠으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보면 된다. 그렇게 하면 중심내용이 뭔지 어떤 의도로 글을 쓴 건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수능시험처럼 제한시간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출제지의 지문 전체를 꼼꼼히 읽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시간이 촉박한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려면 문제를 먼저 보고 관련 지문을 골라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일리가 있는 얘기다. 이렇게 해야만 출제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읽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으니 시험 볼 때는 분명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무엇보다 학교를 졸업한지 한참 지난 후에도 모든 글을 시험문제처럼 대하는 잘못된 읽기 습관이 몸에 밸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학창시절 과도한 성적지향의 읽기 습관이 독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바람직한 독해능력을 갖추기 바란다면 ‘족집게 독해’가 고착화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단어, 표현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그러나 특정 단어 혹은 일부 표현을 놓고 그 글을 판단하려면 먼저 결정적인 표현, 핵심 단어가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글쓴이는 어떤 단어는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하기도 하고 보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비유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단어와 표현만 놓고 보면 하나같이 칭찬 일색인 것처럼 보이는 글이 사실은 비판적 논조를 띄는 경우도 있다. 교묘하게 비꼬는 경우다. ‘제대로 읽기’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제대로 읽는다는 건 결국 문맥을 짚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글을 다 읽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이들이 꽤 있는 것 같다. 특히 다양한 ‘의견’을 남길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그러하다. 관심을 갖게 하는 제목이라면 우선 클릭한다. 그런데 쉽게 이해가게 해 줄 그림이나 도표 없이 죄다 줄글만 나열되어 있다면 끈기 있게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읽기를 포기하거나 쭈욱 스크롤을 내리고 먼저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남긴 댓글에 집중하거나. 그렇다. 후자는 학창시절 족집게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골라 읽기’ 신공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 줄로 그 긴 글을 요약해주니 먼저 달린 댓글은 이들에게 ‘요약노트’나 다름없다.

그러나 댓글에는 집단사고(groupthink·의견을 획일화시키려는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위험이 존재한다. 먼저 댓글을 남긴 사람이 특정 표현에 집착해 글 자체를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단순히 예시를 위해 언급한 부분만 악의적으로 편집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식으로 본인의 주장을 위해 원문을 왜곡시키는 오류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물론 어떻게 읽든 어떤 의견을 남기든 그것은 읽는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호도된 사실(글의 내용)에 근거해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분명한 건 글쓴이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193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영국의 경제학자 겸 정치인 노먼 에인절은 “사람의 행실을 이끄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그 사람의 의견이며, 이 의견은 전적으로 틀릴 수 있다. 오직 토론만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견을 남기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잘못된 사실에서 비롯된 의견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릴 수 있다’. 비판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단 그것이 원색적인 비난, 틀린 비난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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