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덕은 근본이고 재물은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과 말업(末業)은 어느 한쪽이 폐지되어서는 안됩니다. 근본으로써 말업을 견제하고 말업으로써 근본을 견제한 뒤에야 사람의 도리가 궁하지 않습니다.' 성리학을 국가의 근본으로 했던 16세기 조선에서 토정 이지함(1517~1578)은 국부의 증대와 민생에 유용한 것이라면 어떤 산업도 개발해야 한다며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그가 썼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대중에게 친근한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이지함. 그러나 그는 주역ㆍ점술ㆍ관상비기(觀象秘記)에만 능했던 사람이 아니다. 16세기 조선의 재야 학자였던 토정은 농업 중심사회인 조선시대에 상업이나 수공업 해양자원의 적극적인 개발과 국제무역까지 가히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주장을 펼쳤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토정비결에 가려져 있었던 이지함을 경제학자로서 재조명했다. 저자는 토정유고,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화담집, 택당집, 대동야승 등 사료에 남아있는 토정의 흔적을 모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경제 이론가이자 실천가로서 이지함의 삶과 사상을 소개한다. 또 이지함을 통해 16세기 조선학계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가 말하는 16세기 조선은 성리학이 제대로 대세로 자리 잡기 전으로 양명학ㆍ도학 등 학문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추구했던 시기다. 이지함이 민중과 함께 생활하면서 얻은 실천적 사상을 통해 17세기 실학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사회개혁론의 태동과 변천과정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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