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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유리?

실업급여 하한선 최저임금보다 높아 도덕적 해이 조장<br>매년 5,000억~1조 고용보험 적자 초래도


3개월 전 일자리를 잃은 A(55)씨는 한 달에 105만원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전에 다니던 중소기업에서 130만원 정도 받았으니 월 수입이 25만원이 준 셈인데 A씨는 "견딜 만하다"고 말한다. 일을 다니면 쥐꼬리만한 봉급에서 세금이 떼이고 교통비도 들고 스트레스도 받는데 그런 것 없이 105만원 받는 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한단다. 이 때문에 그는 정부의 공공근로나 몇몇 중소업체의 일자리를 소개 받았으나 모두 마다했다.

그는 "근무조건이 확실히 좋은 일이 아니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 8개월을 다 채운 뒤에 다시 직장을 알아볼 생각"이라고 고백했다.

실업자의 생활 안정과 재취업을 돕기 위한 실업급여가 잘못 설계된 제도 탓에 오히려 실업자의 사회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이는 매년 5,000억~1조원에 이르는 고용보험 재정적자로도 이어져 제도를 시급히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는 실업급여의 하한선이 높아 실업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는 점. 현재 실업급여의 하한선은 최저임금의 90%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4,860원이므로 실업자는 최소 한 달에 104만9,760원(4,860원×0.9×8시간×30일)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5,210원으로 인상하기로 한 상태이기 때문에 실업자는 한 달에 112만5,360원을 받을 수 있다.

주 5일 근무와 유급휴일이 1일인 통상적인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면 한 달 임금은 101만880원(4,860원×8시간×26일)에 그친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받는 역설적인 현상이 생기는 것.

서울북부고용센터의 직원 C모씨는 "한 달에 150만원 주는 일자리라고 하더라도 세금과 각종 부대비용, 일하는 데 드는 수고 등을 고려하면 실업급여를 받고 일 안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며 "이런 점 때문에 센터에서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연계시켜주려고 해도 봉급이 적네 직장이 머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을 안 하려는 사람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재의 하한액은 실업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고용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주는 만큼 손질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하한선을 낮추는 대신 10년 가까이 하루 4만원으로 고정된 상한선을 올리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짧은 실업급여 지급 기간도 재취업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의 지급기간은 최장 8개월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30세 미만은 최고 6개월, 30~50세 미만은 7개월에 그친다.



독일ㆍ덴마크ㆍ프랑스 등 선진국이 실업급여를 12~24개월까지 보장하고 오스트리아ㆍ프랑스ㆍ영국 등은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면 정부가 직접 취업을 지원하는 실업부조 제도도 갖추고 있는 데 비하면 우리의 실업급여제도는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의류업체에 다니다가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P모(42)씨는 "나이 제한 때문에 실업급여를 6개월 밖에 받지 못하는데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고 준비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출산휴가ㆍ육아휴직급여 등 모성보호 관련 비용을 실업급여에서 지급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01년 출산휴가ㆍ육아휴직급여를 도입하면서 여기 드는 비용을 실업급여계정에서 일단 지급하되 차차 건강보험이나 일반세금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약속은 잊혀졌고 지난해 실업급여계정에서 지급하는 모성보호 관련 지출은 6,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이는 지난해 전체 실업급여 총지출의 13.7%에 해당해 실업급여계정의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의 일ㆍ가정 양립이 강조되면서 모성보호비용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고용보험의 재정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성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상무는 "현재 모성보호비용 6,000억원 중에 일반세금에서 지원하는 금액은 150억원에 불과하다"며 "모성보호비용의 실업급여 부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고용보험 재정은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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