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반기 민생법안 처리의 분수령으로 삼았던 2월 임시국회에서 기대만큼의 수확을 얻지 못하면서 주요 경제정책들의 향방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파생금융상품 과세, 종교인 과세와 같은 조세정책을 비롯해 분양가상한제,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 고용상 학력차별 금지 등 정부가 적극 추진해온 핵심 법안들이 또다시 장기간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3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정부가 여야에 시급한 처리를 요청했던 이 같은 경제법안들이 지난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해당 안건을 놓고 여야가 쟁점을 좁히는 데 실패했거나 예기치 못한 정쟁 거래로 아예 국회 내 협의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한 탓이다.
이중 파생금융상품 과세 문제는 정부가 의도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국회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과세를 피해왔던 장내 선물·옵션상품에도 오는 2016년부터 0.01%의 세율로 거래세를 매기기로 하고 한국거래소 등과 과세 준비를 위한 실무적 협의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여야는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산하 조세개혁소위원회에서 파생상품의 과세방법을 거래세가 아닌 자본이득과세로 추진하기로 잠정합의했다. 쉽게 말해 파생상품 거래로 차익이 생길 경우에 양도소득세를 매기기로 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과세 행정 편의성과 실효성을 따져볼 때 거래세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렇게 되면 파생상품 거래로 손실을 본 경우에도 세금을 부과하게 되고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며 "파생상품거래의 투기만 잠재우기 위한 차원이라면 양도세를 적용하는 게 맞다"고 전했다.
종교인 과세 문제 역시 국회 입법 논의 방향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종교인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 정서를 반영해 2012년부터 종교인에 대해서도 소득세를 매기는 법안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2월 임시국회 논의 과정에서 종교인에게 세금을 매기는 것보다는 이를 빌미로 일종의 근로보조금(EITC)을 지급하는 쪽으로 입법 방향이 어긋나더니 최종적으로는 종교인에 대해 세무조사 면죄부를 주자는 쪽으로 여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차원에서 종교인들과 간담회를 열었는데 종교인들이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며 "이를 포함한 추가 입법 보완 주문이 여야로부터 제기돼 이를 반영해 법안을 더 손질해야 할지 보고 있다"고 전했다.
법안 자체는 쟁점이 없는데도 엉뚱한 돌발상황으로 기약 없이 처리가 미뤄진 법안들도 있다.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담은 금융소비자보호기본법 제정안, 우리금융그룹이 민영화를 위해 경남·광주은행을 분리매각할 때 맞게 될 수천억원대의 세금폭탄을 면제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과거 트위터를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야권 인사들을 비방했다는 논란이 뒤늦게 불거진 것이 화근이 됐다. 야권이 안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협의를 전면 중단하면서 이들 법안이 줄줄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이와 별도로 금융회사의 고객 정보 관리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야권과 정부, 여당 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표류 중이다.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을 통합하는 내용의 산업은행법 개정안도 이 문제와 관련해 지역적 이해에 얽혀 있는 일부 지역구 의원들의 반대로 상반기 중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금융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하자는 내용의 금융회사지배구조 제정법안은 쟁점 조율은커녕 아예 여야 간 본격적인 논의조차 진행되고 있지 않다.
이밖에도 보험사들이 해외에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 1년 이상 근무한 장년의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을 주는 내용의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 특수관계인 등의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등이 모두 국회에서 발목 잡혀 있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경제입법 사항 중에는 기업들의 고용·투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내용들이 많아 국회가 어떤 방향이 됐든 빨리 결론을 내려줘야 기업들의 경영판단에도 도움이 된다"고 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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