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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34> 중대결단의 미학


사람은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물리 법칙에만 ‘관성’(Inertia)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도 자기 나름대로 과거의 습관과 편안함을 버리지 않으려는 저항 심리를 갖고 있습니다. 일단 무엇인가를 바꾸면 위험해 집니다. 가장 손쉽게 해 왔던 것들, 잘 해왔던 것들에 대한 ‘낯설게 하기’가 필요한 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경영학적으로 표현하면 과거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라고 자부했던 것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해 지는 순간입니다. 때때로 잘못된 변화 결정 때문에 개인이나 조직이 생존의 위협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자세도 스스로를 어려움의 길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됩니다. 환경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하는 추세인데, 과연 우리는 ‘소신을 지킨다’며, 아니면 ‘새로운 것에 적응하느라 발생할 비용을 줄인다’며 흐름에 올라 탈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요. 모든 일에는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적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조금만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가리켜서 ‘기회 구조’(Opportunity structure)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촘촘한 연결망 속에서 기회는 네트워크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둥둥 떠다니는 그 무언가라고 말입니다.

누구나 인생에 몇 번씩 과거와 단절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중대결단의 순간이 옵니다. 자신의 능력과 믿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잘못된 관계를 정리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다가 당당하게 한쪽 편에 서거나. 그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과연 내가 이 길을 감으로써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안전빵이라는 게 있다면, 왜 그 많은 정치적 변화의 시도가 ‘쿠데타’로 그쳤으며 실패한 창업들이 나왔겠습니까. 혁신이 꼭 성공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잘 모르는 길을 가는데 적은 비용으로 무난히 가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계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래된 문인이나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 이상 현재가 행복하지 않을 때 과감한 선택을 할 필요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괴테의 일생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삶에서 권태를 느낄 때마다, 또는 사회에서 무언가 모순이 있다고 느낄 때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외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자기가 느끼고, 보아왔던 일상을 다른 각도로 되돌아보게 하는 공부입니다. 게다가 여행은 외롭습니다. 철저히 자기가 우위를 발휘했던 삶의 조건들을 버려야만, 먼 곳을 거닐면서 겪게 되는 불편함과 낯섦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치열하고 고독한 시간을 견뎌내고 나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버티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것들과 결별하는 중대결단을 내리는 일이 두렵지 않아 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때마다 국외 순방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안타깝게도 국가에 불행이 있을 때마다 외부 일정이 생기는 듯 합니다. 박 대통령은 정해진 스케줄을 포기하지 않는 편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태도를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 박 대통령에게도 해외 순방은 지금까지의 익숙한 의사결정을 되돌아보는 연습이 될 것입니다. 오는 6월 18일은 대통령이 2년 반의 임기를 결산하게 되는 반환점이라고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타이밍이라면, 지나온 시간들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지도자로서의 중대결단이 더 쉬워 질지도 모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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