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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캠퍼스 도시 꿈꾸는 이화여대 'ECC'

주변도시에 스며든 '축구장 8배 지하 캠퍼스'

ECC는 지하에 그 몸을 숨기면서 지상의 풍경을 살려냈다. 저 멀리 캠퍼스 외부의 건물들이 보인다.

ECC 계곡 내부의 유리와 그를 지탱하는 철판은 외부의 빛을 하루종일 내부로 받아들인다.

ECC 모서리에 위치한 성큰가든은 빛을 반사해 내부로 쏘아준다. 이곳을 조망하는 소파는 항상 학생들로 차 있다.

옛 운동장에서 바라본 본관(왼쪽)과 현재 ECC에서 바라본 본관. /사진제공=이화여대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프랑스의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 ECC 전경. 축구장 8배 규모의 거대한 건축물이지만 지하 6층~지상 1층 등 건물 대부분이 지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수목 보존하며 공간 확충 위해 운동장 부지에 지하 건물 만들어

중앙계곡 걸으면 뜻밖의 웅장함 느껴… 양쪽 유리벽으로 지하 공간 채광 해결

1층이자 옥상에 서면 학교가 한눈에… 시설 개방해 외부와 소통·관계형성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화여대. 정문을 들어서면 여느 캠퍼스와 다를 것 없는 건물과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1분여만 앞으로 걸어가면 마치 계곡과 같은 광장이 드러난다. 광장의 끝에 있는 이화여대 본관을 바라보며 완만한 지하 보행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유리로 된 벽이 양옆으로 높이를 키워간다. 계곡 중앙의 평지까지 내려오면 양쪽의 유리벽과 경사로, 앞쪽에 위치한 130여개 계단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처음 온 사람들은 이곳부터 'ECC(Ewha Campus Complex·이화캠퍼스복합단지)'의 탐험을 시작한다. 옛 운동장 부지에 들어선 ECC는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 지난 2008년에 준공된 이 건물은 '캠퍼스와 도시의 조화'라는 화두를 던진 건물이기도 하다.

지하에 묻힌 축구장 8배 규모 건물

ECC는 연면적이 축구장의 8배에 달하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겉에서 보면 웅장함을 느끼지 못한다. 이유는 건물 대부분이 지하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지하 6층~지상 1층이 그것을 말해준다.

계곡 중앙광장을 통해 지하 4층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는 서점과 카페·피트니스센터·극장·공연장 등 편의시설이 있다. 지하 3층부터 지하 1층까지는 학생들의 공간이다. 강의실과 자유열람실·교수연구실·학교사무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나머지 지하 5~6층은 주차장이다.

ECC가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 캠퍼스라지만 지하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실내는 밝다. '캠퍼스 밸리(계곡)'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거대한 유리 계곡 덕분이다. 설계자 페로는 이를 '빛의 폭포'라고 이름 붙였다.

빛의 폭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빛을 지하 공간으로 받아들인다. 또 외부 유리벽을 지탱하고 있는 철판은 빛을 반사하는 역할까지 해낸다. 한쪽 구석에는 빛을 끌어들이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중앙광장에서 동북쪽 모서리에 위치한 성큰가든이 그것이다. 이 가든 내에 설치된 스테인리스 스틸은 빛을 반사해 지하를 밝힌다. 바닥에 얇게 깔린 물까지도 반사 효과를 낸다. ECC 내부에서 이곳을 조망할 수 있는 소파는 쉬어가려는 학생들로 항상 만석이다.

조경이자 풍경의 일부인 건축

ECC에서 유일한 지상 건축물은 성큰가든에 맞닿은 엘리베이터 두 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나오면 ECC의 옥상이자 정원에 들어서는데 이곳에 서면 시야가 드넓게 트인다. 본관과 체육관·중강당 등 학교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며 정문 쪽으로는 외부에 늘어선 건물들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서울 시내에서 쉽사리 누리기 힘든 지상 조망권이다. 건축이 조경의 역할을 하면서 풍경 속에 녹아든 덕분이다.

이는 철저히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페로는 "100년의 전통을 지닌 이화의 수목과 고풍스러운 건물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지상의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계곡의 좌우에 지하 6개 층을 숨겼다"고 설명한다.

이화여대 역시 이를 목표로 했다. 지금 ECC가 들어선 곳은 운동장이었다. 2002년에 캠퍼스 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캠퍼스의 자연 및 건물 보존과 캠퍼스 공간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지하 캠퍼스를 구상했다. 2004년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진행했고 페로가 설계자로 낙점됐다. 그는 장 누벨, 마리오 보타와 함께 최근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힌다.

당시 기획을 총괄한 강미선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페로의 계획안은 지하 공간의 채광을 굉장히 잘 해결했다"며 "또 단순한 공간설계로 지하 건축에서 중요한 방재와 피난의 측면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캠퍼스와 도시와의 조화 시도



ECC는 도시공학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바로 대학교 캠퍼스와 주변 도시 공간과의 관계성을 고민하고 화두를 던진 첫 대학교 건축으로 평가되고 있어서다. 일단 ECC는 학교 외부인들을 내부로 끌어들인 점에서는 성공한 모습이다. 강의와 사무를 위한 공간을 제외하면 외부인들이 마음껏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캠퍼스를 즐길 수 있다. 지하 4층의 카페와 극장 등 편의시설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학교를 방문한 외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ECC가 자족성이 강한 시설이다 보니 캠퍼스 주변의 도시 공간과의 교류나 소통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국내 대학 캠퍼스가 외국처럼 주변 도시와 조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오래된 미국의 대학들은 건물 한두 개부터 시작하다 보니 도시 곳곳에 여러 건물이 분산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그 시작점이 다르기에 모두 담장이 쳐진 단지로 만들어져 외부로의 공간적 확장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캠퍼스와 도시의 관계 맺음에 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학교 사무실과 기숙사 등을 학교 외부에 마련하는 등 기존 도시 조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에 지어지는 이화여대 기숙사가 외부와 맞닿은 캠퍼스 모서리에 자리 잡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수로 냉난방 등 친환경 기술 최대 활용

친환경 기술이 백분 활용된 것은 이 지하 건축물의 백미다. 먼저 땅과 건물 외벽 사이에 1m의 공간을 둬 '열 미로(thermal labyrinth)'를 확보했다. 이는 지하 공간이 지상보다 온도가 일정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외부 공기는 내부로 유입되기 전에 이 열 미로를 지나면서 여름에는 식혀지고 겨울에는 덥혀진다.

ECC가 들어선 지하에서 나오는 지하수도 냉난방에 활용된다.

천장에 깔린 파이프에 지하수를 흘려보내 일종의 라디에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설계자 도미니크 페로는 "열 미로와 지하수가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의 70~80%를 감당한다"고 설명했다.

강미선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페로는 이 건축물에 친환경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독일의 유명한 전문가를 대동했다"며 "당시의 국내 친환경 건축 중에서도 상당히 선진적이고 선도적이었다"고 말했다.

지하 세계에서 이같이 친환경적인 ECC는 지상에서는 아예 자연에 스며든다. 실제로 계곡의 외부에서 ECC를 바라보면 그저 정원 하부 건축물이자 풍경의 일부로 보인다. 이는 '자연을 깎거나 다듬기보다는 살리라'는 지론을 가진 건축가의 소망이었다. 페로는 "ECC가 건축물로서의 존재감은 더 사라지면서 그 자체가 자연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사진= 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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