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에 맞지 않아 술 자체를 즐기지 않고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습니다. 회사 근처의 스포츠센터에 등록해 나름 운동도 꾸준히 했는데 왜 이런 병이 생겼을까요?”
30대 초반의 직장인 서경제(남·가명) 씨는 한달 전쯤 가슴 한 가운데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심근경색증 진단을 받았다. 심근경색은 심장의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갑자기 막혀서 심장에 산소가 통하지 않아 심장 근육이 괴사되는 질환이다. 주로 혈관 내막에 콜레스테롤이 침착되고 혈관 내피세포가 증식돼 혈관이 좁아진 상태에서 혈전이 관상동맥을 막아 발생한다. 당시 혈액검사에서 서씨의 총 콜레스테롤(TC) 수치는 350㎎/dL로 정상 상한선(200) 보다 1.5배나 높았다.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LDL-C) 수치는 정상치(130)의 2배 수준인 250㎎/dL에 달했다. 영락없는 이상지질혈증(dyslipidemia) 환자다.
◇ 혈액 속 지질대사 이상…방치하면 치명적인 ‘심근경색’ 유발
이상지질혈증은 혈액의 지질대사에 이상이 생긴 상태로 2회 이상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TC 200㎎/dL 이상 △LDL-C 130㎎/dL 이상 △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HDL-C) 40㎎/dL 이하 △중성지방(TG) 150㎎/dL 이상 중 하나라도 해당할 때 진단된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표현인 고지혈증(hyperlipidemia)은 TC·TG·LDL-C 등 혈중 지질 수치가 증가된 상태를 가리킨다.
나이와 무관하게 심근경색을 한번 앓으면 ‘초고위험 환자’로 분류된다. 콜레스테롤 목표 수치도 일반인이나 위험도가 낮은 환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혈액검사 결과 LDL-C을 포함해 각종 콜레스테롤 수치가 일반적인 정상 범위에 해당하더라도 안심해선 안된다는 의미다. 김영학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LDL-C은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의 재발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인자"라며 "심근경색 등 관상동맥질환을 경험한 환자는 일반인과 달리 LDL-C 수치가 낮을수록 좋다"고 설명했다.
가족력이 있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이 발병했다면 앞으로 살 날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매우 적극적인 콜레스테롤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2022년 말 개정한 진료지침에서 심근경색 등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경험이 있는 초고위험군 환자의 LDL-C 목표 수치를 기존 70㎎/dL에서 55㎎/dL 미만으로 대폭 낮췄다. 심근경색연구회는 치료 후 1~2개월 내 LDL-C를 검사하고 55㎎/dL 미만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더욱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치료 초기부터 LDL-C 수치를 확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치료의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 성인 2명 중 1명은 이상지질혈증…‘약물치료 거부감’이 걸림돌 되기도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2016~202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국내 20세 이상 성인의 40.9%가 이상지질혈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HDL-C 정상치가 남성보다 10㎎/dL 이상 높다는 차이를 반영할 경우 유병률이 무려 47.4%에 달했다. 성인 2명 중 1명 꼴로 콜레스테롤 수치는 물론 심혈관계 위험인자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LDL-C이 나쁘다는 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생활습관을 개선하거나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노력은 크지 않다"며 "스타틴 등 약물치료에 대한 잘못된 거부감도 치료를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심혈관질환 재발 예방 측면에서 조기 LDL-C 목표 달성의 이점은 분명하다. 김 교수팀이 초고위험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성인 환자 2000여 명의 전자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 3개월 이내에 LDL-C을 55㎎/dL 미만으로 낮춘 환자는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심근경색 재발 또는 허혈성 뇌졸중, 입원을 요하는 불안정 협심증 등 주요 심혈관사건 위험이 1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환자가 입원한 직후부터 강도 높은 지질 치료를 적용하는 것이 재발 예방에 결정적"이라며 "실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혈관계 고위험군에서 치료 초기에 강력한 LDL-C 강하 전략을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입증한 최초의 연구"라고 설명했다.
◇ 먹는 약 최대치 써도 조절 안될 땐…콜레스테롤에 직접 작용하는 주사제 고려
일부 환자들은 스타틴을 최대 용량으로 복용해도 LDL-C 목표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다. 심근경색 등의 병력이 있어 LDL-C 수치를 55㎎/dL 아래로 낮춰야 하는 고위험군에겐 기준을 맞추기가 더욱 어렵다. 그럴 때 스타틴·에제티미브 복합제와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치료 대안은 PCSK9 억제제다. 인슐린처럼 복부·허벅지·팔 등의 피하에 주사하는 PCSK9 억제제는 간세포 표면에서 혈중 LDL 수용체를 분해하는 PCSK9 단백질의 활성을 저해한다. LDL 수용체와 PCSK9의 결합을 방해해 혈중 LDL-C 수치를 낮추는 원리다. 김 교수는 “과거에 비해 치료 옵션이 다양해지면서 유전적 소인이 있거나 원인 불명의 중증 이상지질혈증을 앓는 환자들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그럼에도 조기에 목표 수치에 도달하는 환자가 3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SNS(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면서 약 복용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며 "심근경색 등 치명적인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조기부터 적극적인 지질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