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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려놓으며

며칠 전 모교인 고려대 대학병원에서 `시신기증등록증`을 받았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몸, 얼마나 잘한 일인가 하며 스스로 대견해 하다가도 의식없이 죽은 몸이지만 난도질 당할 일을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다. 보수적인 시골 양반의 자손이면서 기독교인인 나는 사후문제에 대해서 엇갈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버지 제사는 정성을 다해 모시리라 결심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요구를 하고싶지 않은 것이다. 산모퉁이 한구석을 깔고 누워 후세들의 비난을 사기보다는 의미있게 삶을 정리하고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에 기쁘게 기증서에 사인을 했던 것이다. 이 일을 결심하면서 내게는 여러모로 감사할 일이 생겼다. 우선 이전보다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되었다. 나는 시신으로 발가벗긴 채 의학도 앞에 놓였을 때 배불뚝이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근육미는 없더라도 최소한 놀림감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에 지루함을 이겨가며 집안에서 달리기를 어언 2개월, 나는 그 동안 5킬로그램의 군살을 뺐다. 다음으로 더욱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게 되었다. 나의 시신을 앞에 두고 `고인의 훌륭한 업적과 인격에 머리 숙입시다`라는 찬사어린 묵념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록 파렴치한 공직자였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시신을 바쳤으니 다 용서합시다`라는 식의 비난조의 평가는 듣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 아이들과 하나님 앞에 모두 공개된다고 생각하며 얼마 남지않은 공직의 길을 정정당당하게 걷겠다는 결심을 했다. 고향가는 길에 나는 가끔 해변가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공룡 발자국을 밟으며 이 땅과 시간의 영원함, 그 속에 있는 `나`란 존재의 미미함, 그리고 절대자의 위대함을 느끼곤 한다. 살아가는 것을 `과거와 미래의 만남`으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내겐 그저 창조자의 뜻을 따라 흘러가는 여정이 아닌가 싶다. 그 가운데에서 어쩔 수 없는 두려움에 떨기도 하겠고, 이를 이기려고 몸부림도 칠 것이다. 온전히 모든 것을 절대자에게 맡겼다고 고백하면서도 한 순간 내 것이 되어있는 한계를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비우고 내려놓는 것임을 배워갈 것이다. 내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 아니 이미 내 것이 아닌 시신을 내려놓으며 나는 갑자기 철학자가 된 기분이다. <최낙정(해양수산부 차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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