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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관점서 본 공간의 상호 치환·이식 방법 해결
어그러진 부분 없는 3D그래픽 구현에도 기여할듯
서로 다른 관점에서 만든 도넛 모양의 곡면을 비교하고 상호 치환ㆍ이식할 수 있을까. 로봇의 팔 길이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어그러진 부분 없이 모든 것을 3D 그래픽으로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것이 숫자로 증명되면 현실은 놀랍게 달라질 수 있다. 리만곡면의 모듈라이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을 밝혀낸 김영훈(44·사진)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의 얘기다.
14일 서울대에서 만난 김 교수 연구실 한쪽 벽은 알 수 없는 수학 공식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범인의 눈에는 그저 복잡한 암호일 뿐이었지만 사실 그 속은 세상의 만사를 설명하는 원리로 가득했다.
김 교수는 대수기하학 분야에서 높은 연구 성과를 보인 공로로 5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수기하학과 리만곡면은 정수론·해석학·기하학·위상수학 등 현대 수학의 모든 분야를 이어주는 핵심이다. 물리적 시공간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경제학·산업공학·양자정보학·암호학 분야 등에 폭넓게 응용된다.
특히 김 교수는 대수적 다양체 상의 리만곡면들의 모듈라이 공간의 성질을 설명해 각 공간을 서로 비교ㆍ치환ㆍ이식할 수 있는 근거를 규명했다. 김 교수가 기하학적 수술을 통해 비교한 모듈라이 공간은 지난 30년간 세계 대수기하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미해결의 영역이었다.
김 교수는 "대수기하학은 수학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것으로 현대에는 이 분야가 강한 나라가 곧 수학 강국으로 인정받는다"며 "모듈라이 공간의 경우 그동안 여러 사람이 건설하긴 했으나 비교할 방법은 없었다"고 연구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곡선ㆍ곡면을 설계하는 관점마다 모듈라이 공간이 모두 달라지는데 특정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어떻게 이식하느냐에 대한 방법을 알아낸 것이 이번 연구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이번 연구는 앞으로 로봇 산업이나 3D 그래픽 등에 발전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 공간을 이식할 수 있게 된 만큼 3D 그래픽의 어그러진 부분을 다른 공간 기술 이식을 통해 바로잡고 로봇 팔의 길이가 늘어날 때마다 달라지는 활동 공간도 좀 더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또 다른 업적은 대수적 다양체에 리만곡면이 얼마나 포함되는지 알려주는 불변량을 구한 것이다. 적분이 되지 않는 양쪽이 열린 공간에서 가상 사이클이 퍼지지 않고 특정한 곳에 모이도록 해 정북 변수를 크게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활용해 일반형 곡면의 그로모프-위튼 불변량을 처음 계산해냈다. 또 푸앵카레 불변량과 사이버그-위튼 불변량의 동일성도 증명했다.
특히 그로모프-위튼 불변량은 만물의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끈 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불변량에 대한 정의만 있었을 뿐 지난 10여년간 어떤 수학자도 이를 계산해내지 못했다. 김 교수가 개발한 수학적 신기술과 증명이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학술적 성과인 이유다. 김 교수는 미국수학저널, 기하학과 위상수학, 미국수학회지, 듀크수학저널 등 수학 분야 정상급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로 이제 일반형 곡선의 불변량은 계산이 가능해졌다"며 "불변량을 계산해낸 것이 수학자로서는 가장 자부심이 느껴지는 성과"라고 흡족해 했다.
김 교수는 고교 시절인 지난 1988년 한국이 국제올림피아드에 처음 참가했을 때 한국 대표 가운데 유일하게 동상을 수상하며 수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드러낸 수재다. 서울대 재학 시절에도 대학생 수학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사 학위를 위해 미국 예일대에서 수학할 때 세계적 석학들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 수학은 하루하루 인생을 즐겁게 하는 최고의 직업이다.
김 교수는 "늘 새로운 수학 문제를 찾다 보니 매일매일이 즐겁고 계속해서 똑똑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며 "어려운 문제를 처음 맞닥뜨릴 때마다 괴롭기도 하지만 이 길을 걷는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 리만곡면=19세기 수학자 리만이 타원적분이 갖는 성질을 규명하면서 찾아낸 공간. 정수론·해석학·기하학과 위상수학 등 수학 전 분야를 관통하는 연결고리다.
◇모듈라이 공간=대수적 다양체의 대표자 모임과 같은 공간. 리만은 모듈라이 공간은 다시 새로운 대수적 다양체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불변량=공간을 주어진 범주 내에서 변형시켜도 값이 변하지 않는 것.
◇가상사이클=가상교차이론에서 복잡한 기하학적 조작을 통해 적분이 잘 정의되도록 원하는 부분 공간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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