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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조기졸업/기고] 졸업은 또다른 시작
입력2001-08-23 00:00:00
수정
2001.08.23 00:00:00
정부가 IMF 차관을 모두 상환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IMF 관리 체제에서 공식적으로 졸업했다.한국 경제가 경제 주권을 회복하고 대외신인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이 들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개운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졸업(commencement)이 문자 그대로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우리 앞에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제 경제 선진화를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에서 IMF 관리 체제 속에서 얻은 성과와 교훈을 되새기고 향후 과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외환 위기는 외환 유동성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글로벌화와 자유화라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우리 경제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구조적 문제, 시스템의 문제다.
다름 아니라 기업은 차입에 의존하는 외형 성장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부는 금융 자유화의 전제 조건인 감독 기능을 제대로 보유하지 못하여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3년 동안 추진된 경영의 투명성 제고, 지배 구조와 재무 구조의 개선, 새로운 금융 감독 체계의 도입과 같은 제도 개혁에 힘입어 과도한 자본재 수입과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외채가 감소했고 경상 수지와 외환보유고가 신속하게 호전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국민 경제와 기업 경영의 실질적이고 미시적 측면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경제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나타내는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아직도 97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많은 상장 기업의 수익은 금융비용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한 규모이다. 국가 경제의 총체적인 경쟁력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은 아직도 세계 30위 권을 맴돌고 있다.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부문의 효율성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또한 소득분배도 악화되어 사회통합력 차원의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의 구조조정이 재무 측면의 문제를 치유하는데 치우친 나머지, 정작 국민경제의 실질적인 개선을 도모하는 경제 구조와 운영 시스템의 개혁은 미흡했던 것이다.
한편, 우리 경제는 IMF 관리 체제 속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경험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 자본의 유입이 우리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외국 자본과 함께 도입되는 경영 관행과 제도가 한국 경제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이러한 믿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외환 자유화의 이면에는 투기성 핫머니의 위협이 존재하여 언제라도 국내금융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
모처럼 도입된 외국 자본이 공장 매입에 투자되지 않고 부실 채권의 담보물 처리에 투자되어 높은 확정 이자만 물게 된 경우도 있었다.
기업 회계와 재무구조에 관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도입하더라도 불필요한 정부 규제가 남아 있거나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국내 기업을역차별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경험도 하였다.
이런 교훈에 비추어 볼 때 한국 경제 앞에 놓여진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실상에 맞는 경제 구조의 개편과 시스템 운영의 선진화가 바로 그것이다.
경제 구조의 개편은 다름 아니라 새로운 성장 원천을 모색하고 국가 경제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이제 단순하게 생산 요소의 양적 결합을 확대하여 성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상품 경쟁이 아니라 공정 경쟁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경제는 10년 앞을 내다보는 산업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외 경제 여건이 악화되어도 국내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된다.
반도체와 같은 일부 업종의 호황에 기인한 경제 지표의 호전때문에 자기만족감(self- complacency)에 빠져 경제 운용을 그르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대기업의 역할도 재정립하고 중소기업, 벤처기업과의 협력 모델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주변국가와 공조 체제를 유지하여 해외 시장에서 오는 충격에 공동 대응하고, 동북아경제권에서 한국 경제의 위상을 확고히 해야 한다.
한편, 시스템 운영의 선진화는 바로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특히 정부는 개방된 경제 상황에서는 더 이상 무의미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진정으로 시장 원리를 중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공공 부문과 노동시장의 구조 개혁도 철저하게 원칙과 법치주의에 의거하여 완수되어야 한다. 시장원리와 법치주의가 경제 정책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이 되어 경제 각 부문에 자율과 질서가 자리잡아야만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경제 구조의 개편과 시스템 운영의 선진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경제 리더십이 필수 전제 조건이다.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여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였던 때와 같이 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결집할 수 있는 정부의 리더십이 아쉽다.
현대경제연구원장 김중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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