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핵심 국정 과제들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6∙2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의식한 정부가 연초부터 밀어붙이려던 주요 정책들에 대해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기관 선진화를 위해 도입하려던 성과연봉제다. 정부는 당초 지난 1월 말 연봉제 표준모델을 제시하고 공공기관들의 보수체계를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3월 중반에 접어드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10일 공공기관 워크숍을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 문제를 논의한다는 게 전부다. 지난해 말 뜨거운 감자였던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 도입 문제를 비롯해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도 그렇다. 당초 각각 1월과 3월 공청회 개최 등 여론수렴을 거쳐 조속한 대안을 내놓겠다고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물밑작업만 한창이다. ◇지방선거 의식 '속도조절' 나서=정부가 연초부터 밀어붙이려던 굵직한 정책들이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 선거 이후로 연기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10월 공공기관 개혁의 마지막 단계로 연봉제 표준모델을 제시하려 했으나 공공기관들의 반대여론이 높아 올 1월 말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3월 중순에 접어든 최근까지 연봉제 표준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노조의 반발이 장애였다면 이번에는 지방선거에 발목이 잡힌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 연봉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공공노조의 반대가 심하다"며 "선거에서 여당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사와 변호사ㆍ회계사 등 전문직의 반발이 거센 전문자격사 시장 개방 문제도 사실상 하반기로 미뤄진 상태다. 공청회 등 여론수렴 일정조차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 방식과 시점이 달라질 수 있어 선거 이후에 논의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영리병원 도입 문제도 장기전에 돌입한 상황이다. 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는 하반기까지 양측의 입장을 조절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영리병원 도입에 따른 의료 양극화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큰 상황에서 정부가 섣불리 추진했다가는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장기전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선거용 '표심잡기 정책' 여론몰이=한편 과천청사에서는 정부가 여당으로부터 지방선거용으로 활용할 정책들을 정리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주로 정치인 출신들이 장ㆍ차관으로 있는 부처를 두고 하는 얘기다. 최근 지식경제부는 가스요금 연동제와 가격인상을 당초 3월 초에서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인 7월 초에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최경환 지경부 장관도 가스요금 연동제를 시행하지 않기로 한 게 아니라 타이밍을 보는 것이라고 얘기해 '선거를 의식한 행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지경부의 한 관계자는 "여러 가지 경제상황을 고려한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판단이 어느 정도 가미된 점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부와 노동부가 내놓으려던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도 당정 간 물밑작업을 통해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일률적인 정년 연장에 제동을 걸면서 '선별적 정년연장 방안'을 내놓으려 했으나 노동부와 여당의 반대로 하반기로 미뤄졌다는 분위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경부나 노동부의 경우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기 때문에 정책을 내놓을 때 정무적 판단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선거를 의식하다 보니 연초 계획이 연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리인상 억제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책으로 분류된다. 중국 등 경기회복이 빠른 나라를 중심으로 사실상의 출구전략이 시행된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성장률 목표달성을 위해 정부가 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중국을 비롯해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도 따라가겠지만 6월 지방선거 이전에는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또 서민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물밑에서 기업들에 미소금융사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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