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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한국의 캐시카우] (3부-3) 히든카드는 고도 기술

원천기술 확보없인 조선 1위 '사상누각'


남 거제시에 위치한 삼성중공업 조선소의 피솔지역. 이곳에선 요즘 세계 최대규모의 해양플랜트 건조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러시아 사할린 유전지대에 보내질 해양플랜트는 선주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맞춰야 할 만큼 까다로운 공정이어서 내로라 하는 해외 조선소들도 엄두를 못 냈던 대형 프로젝트다. 원윤상 해양기술영업팀 상무는 “본체 중량만 따져도 2만9,000톤에 이를 만큼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면서 “다양한 신공법을 적용하는 등 삼성중공업의 모든 기술력을 총동원했다”고 밝혔다. 국내 조선업계의 막강한 기술력은 바로 한국을 세계 1위의 조선강국으로 도약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조선업체들은 해마다 신개념의 배를 속속 선보이며 세계 조선업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원천기술의 대외 의존도나 핵심기자재의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국내 조선업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최근 호황기야말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연구개발의 적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돼야만 한국 조선산업이 미래 해양시대를 이끄는 글로벌 리더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천기술 ‘갈길 멀다’=국내 조선업계가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등 빅3는 LNG선의 핵심설비인 화물창에 대한 설계 및 제조를 위해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프랑스 GTT에 한척당 선가의 5%에 이르는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LNG선 수주잔량이 100척을 웃돌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국내 조선업계가 GTT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 총액은 1조원을 훌쩍 넘는다. 이처럼 고부가가치 선박의 설계기술은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선박이나 해양구조물은 해외로부터 설계 도서까지 일일이 구입해야 한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양구조물이나 해양설비를 제작할 때 대부분의 설계도서를 해외 엔지니어링 회사로부터 공급받아 제작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초기설계ㆍ기본설계 등을 수행할 해양엔지니어링회사를 설립, 운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디젤엔진도 국내 제작회사로부터 공급받고 있지만 대부분 해외 제작자의 라이선스 제품이어서 원천기술은 전적으로 해외에 목을 매달고 있다. 김영훈 목포대 선박해양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매물로 나왔던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설계 프로그램 개발회사인 트라이본과 독일 최대 엔진생산업체인 MTU 등을 국내 업체가 인수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선박의 개념을 바꿔라=북극의 두터운 얼음덩어리를 깨고 항해하는 쇄빙선이나 가스 공급기지까지 갖춘 LNG선, 1만개의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 국내 조선업계가 그동안 내놓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들이다. 이중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들도 있고 기존 시장의 규모를 키워나간 것들도 있다. 바로 여기에 ‘조선 코리아’의 새로운 이정표가 담겨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선점한 시속 100㎞ 이상의 초고속선과 유럽이 거느리고 있는 초호화 크루즈선 등은 아직 국내 조선업계에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면서 “결국 대안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등 후발주자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싼 배를 만들면 된다는 얘기다. 기술력 없이 만들 수 없고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선박은 LNG선을 비롯해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쇄빙선, 초호화 여객선, 드릴십 등이다. 특히 5억달러를 호가하는 크루즈선은 미래의 선종으로 꼽히고 있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한국은 세계 1위의 조선대국이지만 원천기술이나 크루즈 등 일부 선박에 대한 기술은 유럽이나 일본보다 뒤처져 있다”면서 “중국의 추격과 고부가가치선에 특화한 선진 조선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조선업계만이 가질 수 있는 첨단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D투자 늘려라=국내 조선업계는 미래ㆍ차세대 기술개발보다 수익제품의 생산성 향상이나 단기 애로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호황기에도 불구하고 R&D투자에는 인색하다. 조선공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의 매출액 대비 R&D투자 비중은 지난 2000년 1.23%에서 2004년 0.68%로 줄었으며 2005년에는 0.66%로 떨어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R&D자금의 조달방법도 개선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조달되는 연구개발비가 매년 책정되고는 있지만 연속적으로 투자될 것이라는 확신이 적기 때문에 유연한 기술개발 업무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2000년대 들어 조선업계 연간 R&D 투자금액은 1,5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3분의1이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투자하는 금액이며 나머지 1,000억원가량이 조선업체에서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총 매출의 1%도 안되는 금액은 세계 조선의 선도적 위상을 계속 유지하기에 부족하다”면서 “R&D 비용을 매년 20% 이상 늘려야만 한국 조선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프로젝트' 정부지원 절실 지난해 10월 해양수산부에 비상이 걸렸다.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인 대형 위그선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STX조선ㆍSTX엔진ㆍ21세기조선 등 7개 기업 컨소시엄이 사업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위그선은 시속 250~300㎞에 적재량 100톤급 초고속 선박으로 한척당 500억∼600억원을 호가한다. 당시 STX조선은 정부가 일정 부분 구매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정부나 국책연구소 등과 추진 중인 공동 프로젝트는 이처럼 구호만 거창할 뿐 대부분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공동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고부가치선박으로 불리는 LNG선 건조 때마다 새나가는 로열티를 줄이기 위한 KC-1 프로젝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KC-1 프로젝트는 LNG선의 핵심인 화물창을 국산화하는 계획으로 프랑스 GTT사에 대한 막대한 로열티 지급이나 간섭을 피하기 위해 한국가스공사를 주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시험선박 건조계획을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시험선박을 건조해야 하는데 이를 떠맡을 조선업체가 단 한군데도 나타나지 않아서다. 조선사는 물론 어떠한 해운사도 아직 기술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안고 2,000억원 이상의 건조비용을 지불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양영명 LNG탱커개발센터 센터장은 "국내 조선업계 입장에서는 막대한 기술료 유출을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일이라 선뜻 나서는 조선소가 거의 없다"면서 "하루빨리 LNG선 건조계획을 확정지어야 오는 2010년 시험 운항에 들어가는 전체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등 3대 조선업체와 가스공사는 2009년까지 LNG선 설계 기술을 국산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04년부터 연구를 진행해왔다. 투입된 연구비는 모두 186억원으로 지난해까지 기술개발을 마무리한 뒤 올해부터 실제 적용이 가능한지 검증할 예정이었다. 이밖에 현재 국내 조선업체들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도장 부문 자동화와 빙해수조 시설 등이다. 삼성중공업ㆍ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한진중공업ㆍSTX조선 등 국내 5대 조선소는 2009년까지 도장 부문의 자동화를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도장 자동화는 국내 조선업이 세계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며 "2009년에는 국내 조선소 중 적어도 한곳에서 도장 자동화에 성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선박 대형화와 고속화ㆍ전문화 등에 따른 핵심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저소음 대형 캐비테이션 터널을 내년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최근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쇄빙선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빙해수조 시설' 등 공동연구기반시설 구축 등의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조선업계에서는 한국이 세계 1위 조선국가로서 위상을 강화하자면 업계 공동으로 각종 국제기구나 단체의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ㆍ국제선급연합(IACS)ㆍ국제표준기구(ISO) 등에 활발하게 참여함으로써 조선산업과 관련된 국제규범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때 국내 조선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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