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묵공’, 1998년 ‘라이언일병 구하기’ 등 전쟁영화는 참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영화가 참혹해도 실제 전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포탄이 난무하는 곳에서 피 흘리는 병사는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다. 그들에게 흐르는 피는 공포인 동시에 곧 죽음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출혈이다. 내출혈은 야전에서 군인이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후송하는 동안 압박붕대로 부상병을 아무리 감싸도 내출혈은 멈추지 않는다. 생사를 가르는 지혈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미 국방부는 전장에서 병사들이 스스로 지혈할 수 있는 휴대용 장치를 개발, 보급할 계획을 세웠다. 바로 ‘초음파 지혈대’다. 초음파 지혈대는 작은 장치로 간단한 훈련을 받은 병사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 고안됐다. 가정용 혈압계처럼 초음파 지혈대를 상처 부위에 묶으면 초음파 형상 센서가 출혈을 일으키는 상처를 찾아낸다. 어떻게 초음파가 지혈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혈액 응고에는 최소 13가지의 인자들이 관여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혈액이 응고하지 않지만, 최종 목적은 ‘피브리노겐’이라는 단백질 전구체를 피브린 단백질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가는 섬유 조직인 피브린은 뜨개질을 하듯이 그물을 엮어 적혈구, 백혈구 등 혈구들을 서로 엉기게 해 피가 응고되도록 만든다. 고강도 초음파는 상처 부위를 가열, 피브린이 서로 엉기는 것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혈관의 결합조직 단백질인 콜라겐이 조직을 ‘용접’하는 것을 도와준다. ‘나노지혈’로 불리는 방법도 우연히 발견됐다. 2001년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러틀레지 엘리스 벤케는 생쥐에 뇌졸중을 일으킨 후 그 자리에 짧은 단백질 조각인 펩티드 용액을 주사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은 펩티드 용액을 주사한 쥐들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이들은 펩티드가 스스로 조합돼 젤의 형태가 되며, 나노 단위의 벽을 형성해 상처를 메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단 상처가 아물면 펩티드 젤은 3~4주가 지난 뒤 오줌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에 독성과 부작용이 없다. 나노 펩티드 단백질 섬유는 언제쯤 사람에 적용될 수 있을까? 펩티드 조각이 혈액을 응고시키는 명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성급한 마음을 접고 성과를 기대하며 기다리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