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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학교종이 땡땡땡~ 다시 울린다

■ 박물관으로 갤러리로… '폐교의 부활'


정선아리랑학교

산운초등학교 산운생태공원

울진 '추억의 학교'

영월의 호안다구박물관

마음 어린 날, 못 견디게 그리운 날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녹슨 교문을 지나고 잡초 무성한 운동장을 돌아서 가만히 교실을 들여다본다 무너져 내린 벽과 칠판과 작은 의자들 찢어진 그림, 무인도 깃발처럼 주인을 잃고 잠들어 있다 나의 숨소리와 발소리가 가만가만 귓가를 더듬다가 사라진다 <정군수의 '폐교' 중에서> 『 유년 시절 맘껏 뛰어 놀던 초등학교는 엄마 품처럼 포근한 그리움의 원천이다. 겨울이면 조개탄 난로 위에 탑처럼 쌓아올린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눠 먹고, 운동장에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에 올라탔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벌 서고, 고무줄 놀이하는 여학생 무리에 몰래 숨어 들어가 줄을 끊고 36계 줄행랑을 치고… 그 모든 추억들은 학교의 낡은 담장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느 마을에서부터인가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사라지면서 학교 교실엔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고 아무도 쓰지 않는 책ㆍ걸상만 덩그라니 남은 채 교문은 닫히고 말았다.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화와 급속한 고령화가 시골에 수많은 '녹슨 교문'을 남겨놓게 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해 7월말 현재 집계한 폐교 재산 활용 현황을 보면 지난 82년 이후 문을 닫은 학교는 총 3,348개. 이 중 1,737개가 팔렸으며 830개는 교육이나 수련시설로 빌려줬다. 아직까지 매각이나 임대가 이뤄지지 않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학교도 463개나 된다. 멈춰버린 학교의 시계 바늘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는 없을까. 다행스럽게도 문 닫은 학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폐교가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부활하고 있다. 폐교가 된 모교를 공원과 생태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과정을 담은 '폐교의 부활'(뿌리출판사 펴냄)이라는 책을 쓴 이영훈 씨는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흙을 퍼 날라 지은 유서 깊은 학교(경북 의성군 산운초교)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된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뜻이 맞는 동문들과 힘을 모아 공원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산운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푸른 체육공원으로 탈바꿈했으며 학교 건물은 환경부가 직접 생태박물관(산운생태공원)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모교이자 젊은 시절 2년여간 교편을 잡았던 지수초등학교(경남 진주시 승산리)가 지난 99년 학생 수 감소로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체육관과 급식소를 겸할 수 있는 다목적 건물로 바꿔 모교를 되살리기도 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마음은 나도 모르게 고향으로 달려간다. 설을 열흘 앞두고 그리운 고향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어린 시절의 학교에 미리 다녀왔다. 학교는 우리들과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술가의 영감이 피어나는 감성공간으로, 세상의 지혜를 담뿍 담은 박물관으로, 아이들의 소중한 체험 학습장으로 저마다 힘차게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녹슨 교문 열면 유년의 추억·예술의 향기 가득 인구 고령화로 일찌감치 폐교 문제에 맞닥뜨린 일본은 폐교 가운데 약 80%를 재활용하면서 전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특히 니가타 현 도카마치 시와 츠난 지역에서 3년마다 펼쳐지는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는 인구 감소에 따른 폐교 등을 예술 작업에 활용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자원으로 거듭났다. 이 축제엔 일본 작가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프랑스 유명 작가인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도 첫 행사부터 참가, 폐교를 활용한 '마지막 교실'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지역 주민들이 교실 한 켠에 카페를 열거나 방문객에게 숙박을 제공해 지역 살림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 사무국의 장다은 팀장은 "지난 2000년 첫 번째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마을은 단 2곳, 방문객 수는 16만 명이었지만 지난해 참가한 마을은 200개, 방문객 수도 40만 명이 넘었다"고 설명했다. 60~70년대 학교 재현 향수 자극
조용한 작업공간 예술가들에 인기
군대체험장·편안한 사무실 변신도
■ 당신을 유년 시절로 초대합니다 교실 한 켠에는 음악 시간에 쓰던 낡은 풍금이 자리잡고 있고 교탁 위에는 회초리가 놓여 있다. 검은 때로 얼룩진 조개탄 난로도 눈길을 끈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신고 다녔던 검정 색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60~80년대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추억의 학교'가 조만간 울산 북구 당사동 옛 동해분교 건물에 들어선다. 학창시절 흑백 사진과 상장, 교과서, 학용품, 교복, 풍금, 난로, 교탁, 각종 일지, 양은 도시락 등 소품을 모아 옛 교실 모습을 재현한다. 시대별 교육 과정을 담은 각종 자료들도 전시한다. 학생들이 입던 교복과 모자, 책가방 등도 전시해 방문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교실 한 구석엔 수업 듣는 학생들, 회초리로 야단치는 선생님 등을 한지 입체 인형으로 제작, 전시할 예정이다. '추억의 학교'를 추진중인 울산시 북구청측은 "기성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제공해 삶에 활력을 주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어렵게 공부했던 부모 세대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추억의 학교는 부모와 자녀가 교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도 폐광촌의 폐교 교실을 개조해 지난 2005년 문을 연 '추억의 박물관'도 과거로 가는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95년 폐교한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함백초교 매화분교가 지난 97년부터 정선아리랑학교로 변신, 정선의 아리랑 정신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며 특히 2005년부터는 추억의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폐교의 모범 활용 사례로 꼽혔다. 추억의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 손때 묻은 책과 가방, 딱지 등을 보며 탄성을 연발한다. 먹고 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절, 힘들고 고단했지만 당시의 추억들이 코끝 찡한 향수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이 곳은 입장권을 확보할 때부터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인근 마을 상점이나 식당을 이용(2,000원 이상)하고 주인으로부터 표찰을 받아야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이 과정에서 시골의 훈훈한 인심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미소짓게 된다. ■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폐교 예술인의 작업 공간, 혹은 예술품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녹슨 교문을 다시 여는 학교도 늘고 있다. 강원도 평창의 옛 노산분교를 활용해 지난 2004년 새롭게 탄생한 '감자꽃 스튜디오'는 평창아라리(아리랑) 보존, 평창고등학교의 대일밴드 양성, 다문화가정 문화교육 등 지역 주민과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올 1월엔 3박 4일 일정으로 '감자꽃 분교캠프'를 마련,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기초음악부터 악기교육, 녹음 등의 교육도 실시했다. 김소연 프로그램 기획팀장은 "건물 유리창 바깥 쪽에 불투명 패널을 붙여 학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지역 주민에게는 '문화공간'이자 '교육공간'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겐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99년 폐교된 경남 남해군의 다초초등학교는 지난 2008년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으로 변신해 운영되고 있다. 김흥우 전 동국대 예술대학장이 평생을 모아온 공연 관련 자료를 기증해 이뤄진 국내 유일의 탈공연예술촌에는 국내외 2만여점의 전문서적, 세계 탈 700여개, 영상 자료 3,000여개 등 총 25만여점의 자료를 갖추고 있다. 남해군 물건리 옛 물건초등학교 부지에 들어선 해오름예술촌도 도예ㆍ알공예ㆍ칠보공예ㆍ황토 체험 등을 하면서 예술적 감각을 깨울 수 있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봉면면 무이리에 있던 무이초등학교는 2001년 평창무이예술관으로 변신했다. 서양화가 정연서 씨, 서예가 이천섭 씨, 조각가 오상욱 씨, 도예가 권순범 씨 등 4명은 2년간의 준비 끝에 예술작품이 전시된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했다. 운동장은 야외조각공원, 교실은 도자기와 서예작품 전시실로 바뀌었다. 이곳에선 도예체험, 판화체험, 서예체험 등 예술가들이 직접 교육하고 있으며 매년 가을이면 인근 이효석마을과 메밀꽃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한층 인기를 끈다. 전남 영암군 옛 군서북초등학교는 문화예술체험학교인 '너른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도자기 공예, 천연 염색, 한지 공예 등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평생 교육 및 취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1년 루게릭병 판정을 받고도 사진 작업에 몰두한 김영갑 작가는 폐교된 제주도 삼달분교를 개조해 2002년 자신의 갤러리인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의 문을 열었다. 지난 2005년 작가가 잠든 후에도 계속 운영되고 있는 이 곳은 제주도의 풍경을 사랑해 20년동안 제주도 사진만을 고집한 그의 생전 모습과 사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 지식의 보고 '박물관'으로 세상을 만나다 잡초로 뒤덮여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폐교에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세상의 지식과 만나는 곳들도 있다. 다양한 주제에 맞춰 전시 및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은 배움의 전당인 학교가 안성맞춤이기 때문. '박물관 고을'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강원도 영월은 19개 박물관 가운데 5개가 폐교를 활용한 것이며 올 3월 개관할 예정인 한국 거미관도 옛 주석분교 터에 자리잡고 있다. 영월군 북면 문곡리 옛 문포초교 자리에 들어선 영월곤충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개관한 곤충 전문 사립박물관으로, 설립자인 세경대학 건축디자인과 이대암 교수가 30여년에 걸쳐 채집한 국내외 곤충 1,000여종 2,000여 점이 전시돼 있으며 살아 있는 곤충을 관찰하고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국제현대미술관도 옛 영월초교 삼옥분교 터에 지난 2000년 문을 열었다. 야외조각공원에는 세계 각 국의 대형 조각품 40여 점, 미술관에는 프랑스ㆍ이탈리아 등 70개국 350여점의 조각품이 전시돼 있으며 실내 전시실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월군 하동면 내리계곡 입구에 있는 호안다구박물관은 옛 내리분교를 리모델링해 지난 2007년 선보인 곳으로 한국과 중국의 다양한 차 문화 및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 옛 양화초교 자리에 세워진 지적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 리진호 관장이 40여년간 수집한 지적 유물(토지문서, 측량기계 등) 2,000여 점과 향토자료, 관련서적 등이 빽빽하게 전시돼 있다. ■ 폐교의 무한변신은 무죄 이주 여성을 위한 복지 공간, 군대 생활을 미리 체험해 보는 군대 체험 학습장, 직장인들의 일터 등 폐교의 무한변신 사례도 재미있다. 폐교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끊임 없는 실험 정신을 짐작케 하는 공간들이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마을에 자리한 옛 삼기초교는 지난해 멋진 미술 놀이터로 부활했다. 1층 교실 두 칸은 다목적 전시를 위한 마을기록전시장으로, 2층 교실은 다문화카페와 미술체험장으로 변신했다. 아이들이 무릎 꿇고 벌서던 긴 복도는 예쁜 갤러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특히 다문화 카페는 완주군 내 200세대가 넘는 다문화 가정을 배려하기 위해 마련됐는데 이주 여성들이 한국 문화 적응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향수와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이다. 성현옥 완주지역문화자원연구회 총괄 담당은 "먼지가 수북하게 쌓이고 거미줄이 가득했던 곳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며 "마을 화합과 친목 도모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순천시 벌량면 대룡분교는 지난 2002년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인 섬돌요양원으로 탈바꿈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농촌 지역의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있다. 군대 생활을 미리 맛볼 수 있는 체험장도 옛 학교 터에 들어섰다. 충북 보은군의 회인초교 옛 회동분교에는 '군대미리알기 체험장'이 운영되고 있다. 박동호 중령이 세운 이 체험장은 입대를 앞둔 예비장병들에게 군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체험생들은 전투복, 전투화, 전투모를 착용하고 모의소총까지 지급받은 뒤 자유배식, 식기세척, 청소, 점호, 불침번 근무 등 실제 군인과 똑같은 일과를 체험한다. 박동호 중령은 "2년간의 군 생활을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에서 '스스로를 계발하며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바꾸는 게 체험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폐광촌인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하이원리조트의 사무동은 폐교를 활용해 직원들의 일터로 사용하고 있다. 하이원은 지난해 5월 강원랜드 호텔 안에 있던 사무 공간을 학생들이 떠나고 비워있던 인근의 옛 고한초교로 옮겼다. 리모델링을 통해 교실을 사무실로 꾸몄고 운동장은 넓은 주차장으로 변신했다. 이 곳에서는 영업부서를 제외한 2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리모델링 비용도 2억 8,00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이원 호텔 안에 근무할 때는 팀별로 사무실이 흩어져 있고 공간도 비좁았지만 폐교로 이전한 뒤로는 관련 부서가 한 곳에 모여 업무 효율성이 개선됐다. 봄ㆍ여름엔 직원들이 공터에서 토마토, 옥수수 등을 재배하며 자연과 벗하는 생활의 즐거움도 누린다. 특히 고한초교 졸업생 출신으로 하이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재무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우병선 대리는 "지난 89년 졸업하고 만 20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셈인데 6학년 때 공부하던 그 교실에서 근무를 하게 돼 느낌이 특별하다"며 "유년 시절에 이 교실에서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던 것처럼 이제는 같은 공간에서 나와 가족을 위한 꿈을 펼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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