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박정환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입단한 직후였다. 중요한 대국이 벌어지는 날이면 그는 언제나 한국기원에 나와 검토실을 지키곤 했다. 새내기들은 원래 검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박정환도 말없이 구경만 했는데 어쩌다 선배들이 그의 의견을 물으면 짤막하게 자기 소신을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 의젓함이라니. 게다가 그의 몸가짐에는 어딘지 품위가 있어보였고 눈이 아주 맑았다. 혈통 좋은 사슴을 보는 느낌이었다. 얼마 후부터 그는 바둑리그에 출전했다. 거기서 그는 두각을 나타냈다. 쇠를 먹는 불가사리처럼 척척척 집을 챙기고 훅훅훅 상대의 돌을 몰아붙이고 쓱쓱쓱 수를 만들어냈다. 그의 바둑을 관전하는 것이 필자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흑37로는 참고도1의 흑1로 두고싶은 유혹을 받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면 백은 2로 어깨를 짚을 것이다. 흑은 3, 5로 두는 정도인데 이때 백6으로 누르는 수가 너무도 힘차다. 이런 자리를 당해서는 흑이 바둑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박정환은 지긋이 참고 흑37을 두었다. 흑45가 아주 위험한 수였는데 백홍석이 그것을 응징하지 못했다. 참고도2의 백1, 3으로 두었더라면 흑이 도저히 이 바둑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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