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혼란 휩싸인 한국… 대란 또 터지나
정치권 강행 의지… 재정부담 갈등·혼란 재연 불보듯[심층진단] 무상보육 대란 또 오나여야, 정부 철회에 잇단 비판 내달 예산심사서 복구 별러매년 7,000억 추가 부담에 지자체 "포퓰리즘" 거센 반발전문가들 "새 보육플랜 짜야"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지난 9월24일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0~2세 전면 무상보육안을 철회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올해 내내 무상보육 예산을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 정부가 두 손을 든 것이다. 시행 의도야 좋지만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필요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임 장관의 발표가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성이었는지, 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고육지책용 선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표심을 잡기 위해 추진했던 정책은 극심한 혼란만 가져오고 말았다.
그렇다면 혼란은 이대로 정리된 것일까. 불행하게도 무상보육이 가져온 혼선과 갈등, 그리고 이어진 혼란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여야가 정부의 0~2세 무상보육안 철회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고 다음달에 있을 예산심사 과정에서 이를 복구해놓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2013년도 예산안에 영ㆍ유아 전면 무상보육이 다시 들어가게 될 것이지만 재정부담을 어떻게, 누가할 것이냐를 두고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28일 "여야 모두 예산심의 때 무상보육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 워낙 강하다"며 "결국 올해 같은 혼란이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5일 내년도 0~5세 영ㆍ유아에 대한 무상보육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정부 제출안보다 늘리기로 결의한 상태다.
여야는 올해는 11월22일 본회의를 개최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다음달 예산심의 과정에서 무상보육 예산이 대거 편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표를 잡기 위해 무상보육 카드를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정부야 계속 반대하겠지만 국회에서 끝까지 밀어붙이면 별다른 도리가 있겠느냐"고 했다.
이는 차기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모두 전면 무상보육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등 주요 대선주자들은 모두 무상보육을 찬성하고 있다.
문 후보는 무상보육에 강한 집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14일 "집권하게 되면 0~5세 무상보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도 지난달 "무상보육을 예산심의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고 안 후보도 "0~2세 무상보육 폐기는 정치불신만 초래한다"고 비판해 무상보육 찬성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돈이다. 재정상황이 빠듯한 상태에서 전면적인 무상보육 실시는 정부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년 보육지원을 하면서 소득에 관계없는 전면 무상보육을 시행할 경우 7,185억원의 재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매년 7,000억원가량의 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회의 뜻대로 2013년도 예산안에 들어가 전면 무상보육이 실현되더라도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정분담 비율을 놓고도 지자체의 반발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정부와 지자체는 무상보육 재원을 반반씩 대기로 했었지만 시행 한 해를 못 넘기고 지방재정이 바닥을 드러냈었다. 9월13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지방보육료 부족분 중 중앙정부가 4,351억원, 지자체가 2,288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지만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연구소의 한 선임 연구위원은 "소득기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분배정의에도 맞다"며 "무차별적인 보육지원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혼란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대선 후보들이 선거 전에 불가피하게 꺼낸 인기영합성 발언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고 재정 현실에 맞는 중장기적인 보육 플랜들 새롭게 세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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