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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이렇게 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계산무진(谿山無盡)을 적으며 시내 계(谿는 溪의 이체자)자는 전서법과 팔분예서법을 합쳐서 썼다. 뫼 산(山) 자는 파격적으로 위쪽으로 올려붙여 여백을 확보했다. 2줄로 쓴 무진(無盡)의 복잡함과 뫼 산자의 단순함이 균형미까지 확보한 탁월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이다. 추사체의 완성도가 절정에 이른 68세 무렵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87회 가을정기전시 '추사정화(秋史精華)'전을 오는 12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연다.
이번 전시는 19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추사의 서예작품을 중심으로 그림까지 곁들여 44점을 선보인다. 국내 최고의 김정희 연구가로 꼽히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추사 작품의 정수만 꼽은 시기별 대표작을 통해 추사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라며 "한중일 동아시아 모두가 공감할 추사의 작품세계는 한류의 원조"라고 평했다.
'신동'이던 추사는 중국 서도사(書道史)를 관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방식으로 추사체를 완성했다. 중국 고대 상형문자부터 한나라의 팔분예서체, 위진의 예서체를 비롯해 당·송·원·명·청에 이르는 수천년 중국 서법을 모두 섭렵한 뒤 이뤄낸 것이 바로 추사체. 최 소장은 "30대의 추사는 옹방강(김정희의 스승인 청나라 학자)의 영향을 받은 중후함이 특징이었다면 중국 서도사를 익힌 50대 때의 서체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출품작 중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37세때 쓴 행서대련 '직성수구'이다. 당대 주류이던 원교 이광사의 '원교필결'을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비판한 서첩 '서원교필결후'와 서첩 앞뒤에 그린 그림 '고사소요'와 '소림모정'도 선보인다. 30년이나 고민해 적은 '침계'를 비롯해 서법에 기반을 두고 난 치는 법을 터득한 '난맹첩' 등 추사 애호가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들이 전시된다.
미술관 앞에 수백m 관람 대기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을 보여온 간송미술관은 이번에 처음으로 하루 관람객 500명씩 예약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070)7774-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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