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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전7시55분 한국은행을 전격 방문했다. 한때 ‘남대문 출장소’라고 업신여겼던 곳을 윤 장관이 탄 에쿠스 차량이 통과하던 그 순간 한은 총재와의 역사적인 회동을 반기듯이 하늘에서는 고대하던 단비가 내렸다. 정부 경제정책 수장이 대규모 간부단을 이끌고 한은을 방문한 것은 지난 1950년 한은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예정보다 5분 일찍 8층 총재실을 찾은 윤 장관을 맞아 오랜 지기와 해후한 듯 이성태 총재는 두 손을 맞잡고 반갑게 인사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윤 장관이 2004~2006년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은 시절 이 총재는 부총재로서 금감위 상임위원을 지냈다. 이 총재가 2006년 4월 한은 총재가 됐을 때 두 사람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각각 기관장으로서 다시 조우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윤 장관은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이 총재는 조사국장으로 호흡을 맞췄고 훨씬 이전에도 비슷한 업무를 맡아 친분을 유지해왔다. 지연ㆍ학연도 남다르다. 윤 장관(63)은 경남 마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이 총재(64)는 경남 통영 출신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학번으로는 이 총재가 윤 장관의 1년 선배다. 이런 인연에서인지 윤 장관은 조찬 회동에 앞서 이 총재에 대해 “정책 파트너로서 오랫동안 일해와 눈빛만 봐도 안다”고 ‘보통 사이’가 아님을 강조했다. 또 “한은이 금융위기에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친 것을 인정한다”며 “앞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해주면서 정부 정책과 협력해 조화를 이뤄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 역시 “같이 협력해서 잘해야 한다”며 윤 장관의 말에 공감대를 표했다. 오전8시25분부터 시작된 비공식 조찬 모임도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는 후문이다. 식사시간은 상호 간에 환담이 오가면서 당초 예정보다 20분이나 지난 9시30분까지 1시간 이상 진행됐다. 언변 좋기로 소문난 두 수장의 유쾌한 대화로 양측의 해묵은 앙금이 상당부분 해소된 느낌이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조찬 모임에는 이 총재를 비롯해 이승일 부총재, 남상덕 감사 등 한은 측 10명과 윤 장관을 포함해 허경욱 제1차관,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 노대래 차관보 등 재정부 측 8명이 마주했다. 재정부 간부들은 공교롭게 대부분 붉은색 계통의 넥타이로 강렬함을 살린 반면 한은 쪽에서는 푸른 빛깔의 넥타이로 차분함을 보여줘 눈길을 모았다. 양측은 조찬 간담이 끝난 뒤 보도 자료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두 기관 간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이 긴요하고 경기침체 대응을 위해 재정과 금융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은행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인식을 같이했다. 이 총재는 “세계적으로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데 중앙은행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며 “그러나 워낙 복잡한 사안이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구ㆍ검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한편 조찬 모임에 앞서 두 사람은 주위를 물리치고 20분간 독대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향후 경제정책 방안에 대해 협조 당부가 오갔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만남은 2시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친 격랑을 헤쳐나가야 할 한국호 선장으로 재정부와 한은과의 찰떡 팀플레이를 기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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