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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김상근 상보 회장

'2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소년가장 때 권투 통해 배웠죠<br>17세 때 아버지 여의고 '뭐라도 하자' 권투 시작… 승부사적 근성 몸에 배<br>환란·키코사태·정치노조… 숱한 위기에도 투자 지속<br>'히든챔피언' 상보 밑거름



까무잡잡한 피부와 꾸밈 없이 소탈한 말투, 다부진 체격에 양복보다는 생산현장에 어울리는 점퍼 차림이 편한 김상근 상보 회장. 그를 보고 어느 누가 세계 광학필름 시장의 신기술을 이끄는 기업의 대표라고 믿을 수 있을까.

투박한 그의 손에, 그의 얼굴 주름살 하나 하나에 37년 역사의 상보가 밟아왔던 세월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예순셋의 CEO에게선 지친 기색이 없다. "경영은 끊임 없는 도전이고 이제 살만한가 싶으면 언제고 위기가 찾아왔다"는 김 회장. 올들어 온전히 쉬어본 날이라곤 단 하루뿐이란다. "제조업이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하루라도 소홀하면 어디서 병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하는 그에겐 하루, 일분, 일초가 아깝다.

서울 양평동 서울사무소 초입에 걸려 있는 100년 달력에서 상보가 채워가야 할 역사는 63년이나 남아 있다. 물론 상보가 창립 100주년을 맞게 될 2077년에는 또 다른 100년이 새겨진 달력이 걸릴 것이다.

"상보를 세우던 1977년, 기술로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들겠다 결심했고 하루도 쉼 없이 달렸는데 이제 반도 못 온 셈이지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린시절 김 회장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그의 나이 17세 때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가장이 된 그는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권투 글러브를 꼈다. 훈련은 혹독했다. 날렵하면서도 대범한 펀치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 이상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2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군대를 제대한 1973년 신영진화학에 입사해 비닐, 필름, 화학재 등 갖가지 재료 다루는 법을 배웠다. 지금까지도 상보의 큰 줄기가 되고 있는 플라스틱 소재 사업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이다.

국내 소재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상보를 세운 것은 그로부터 4년 후. 방 한칸 세를 주고 얻은 보증금 40만원으로 마련한 서울 신당동 골목 쪽방에서 김 회장과 2명의 직원이 의류 포장용 비닐을 만들어 팔았다. 월 매출 300만원만 나와도 탄성을 지르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연간 매출 2,500억원대(지난해 기준) 규모로 성장한 지금의 상보가 자랑스러울 법도 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오히려 느리게 가고 있다"면서 "올해부턴 신사업을 발판으로 가속도를 낼 것"이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일각에선 김 회장을 두고 한우물을 파며 끝내 승부를 보는 우직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적기에 패를 바꿔들 줄 아는 사람이다. 산업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고 그에 앞서 과감하게 투자할 줄 알았다. 수출용 섬유를 포장하는 비닐패키지를 만드는 회사였던 상보가 오디오 카세트 테이프용 폴리에스터 필름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고 나아가 아시아 전역에 수출하며 기존 생산업체들과 어깨를 겨루게 된 것도 김 회장의 결단력 덕분이다.

"당시 오디오 테이프가 막 만들어져서 판매될 때였는데 재료의 99.9%가 수입이더군요. 1년간 기술개발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1979년 개발에 성공하니 대기업들이 찾아와 물건을 달라고 합디다. 1984년에는 해외로 나갔어요. 당시 수출기업들은 국내에서 비싸게 팔고 해외에서 싸게 파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우린 오히려 국내보다 20~30% 프리미엄을 붙였어요. 그리고 이듬해 우리 제품이 점유율 70%를 기록했죠."

90년대초 CD가 나오면서 카세트용 필름 업체들이 휘청대는 사이 상보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준비했던 윈도 필름과 디스플레이용 필름을 순서대로 꺼내 들었다. 자동차나 건물 외벽에 붙여 적외선을 차단하는 윈도 필름은 카세트 테이프용 필름을 잇는 캐시카우 역할을 해줬고 2003년 국내 최초로 디스플레이용 광학시트를 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어 상보는 2008년 디스플레이 뒷면에 붙이는 시트 2장(프리즘시트+보호시트)의 기능을 1장으로 통합해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제품 무게를 줄인 복합광학시트로 퀀텀 점프에 성공했다. 복합시트 매출이 급증하면서 최근 4년간 상보는 연 평균 36%에 달하는 성장세를 이어왔다.

이제는 경쟁업체들이 유사 제품을 출시하면서 최근 들어 주력상품이던 복합광학시트의 수익성은 신통치 않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미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둔 상태다. 바로 7월중 생산라인 완공을 마치고 4ㆍ4분기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가는 CNT투명전극 센서다.

CNT센서는 김 회장이 지금까지 지켜온 기술 1등주의의 산물이다. 2008년 키코(KIKO) 피해로 전년 77억원 흑자를 내던 회사가 440억원 적자 회사로 돌아섰지만 김 회장은 투자를 중단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키코 사태가 터진 것이 2008년 한국전기연구원(KERI)으로부터 CNT투명전도성 필름 기술을 이전받기로 한 직후였다"며 "CTN 기술은 상보가 종합소재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기술인데 본격적으로 돈을 대야 하는 시점에 키코 사태가 터졌으니 참담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연료감응태양전지(DSSC) 핵심기술을 이전받고 DSSC를 이용한 그린홈 요소 기술 개발 국책과제 주관사업자로 선정된 것도 이때였다.

본격적으로 자금 투자가 이뤄져야 할 시기에 가장 큰 위기를 맞았던 셈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2008년부터 5년간 상보가 투자한 R&Dㆍ시설자금은 이 기간 매출의 10% 수준에 육박한다.

김 회장에게 경영은 위기와 극복의 연속이다. 실로 위기는 잊을만하면 찾아왔다. 석유파동과 IMF사태,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 경제 전반을 뒤흔들었던 위기는 물론이거니와 공장 화재와 물난리 등 자연재해부터 경쟁사의 방해공작까지 절체절명의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먹고 살만해지니 정치 노조가 사내에 뿌리를 내리며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특히 150여개 수출 유망 기업을 파산으로 몰고간 키코 계약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지난해말부터 키코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헤지용 상품도 아닌 투기상품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만들어 판 은행이나 이를 승인해준 금융 감독 당국이나 은행만 믿고 구두계약을 맺은 우리 회사나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헛발질을 한 거죠. 하지만 한때 수출유망기업이었던 중소기업들이 키코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기술 개발, 일자리 창출은커녕 하루 하루를 살아넘기는데 급급한 지경이 됐습니다. 정부가 정말 중소ㆍ중견기업 성장사다리를 구축해 나라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생각이라면 중재를 해주든 기업들이 제대로 된 소송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든지 대책을 세워서 이 기업들이 다시 일에만 전념하며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제조업하는 사람은 다 애국자"라는 레토릭도 김 회장이 말하면 이내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김 회장은 "소재산업을 키우지 않고서는 어떤 산업에서도 1등이 될 수 없다"며 "상보가 CNT와 그래핀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제일 가는 소재를 개발해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공급하면 우리 IT 기업들도 글로벌 1등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보는 한국거래소가 선정한 '히든챔피언',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월드클래스 300' 기업이기도하다. 김 회장은 "37년간 회사에 축적된 기술력과 우리가 그간 입증해온 실행력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에 좋은 소재를 제공해주는 데서 나아가 세계 시장의 소재 기술을 선도하면 독일의 '히든챔피언' 부럽지 않은 강자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상근 회장은



▲1950년 서울 ▲1970년 신영진화학 공장장 ▲1976년 국제대 경영학과 졸업 ▲1977년 상보 설립 ▲키코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이사 ▲한국포장기술인협의회 부회장 ▲제8대 김포상공회의소 부회장 ▲김포부천무역상사협의회 회장 ▲서인천세무서 세정협의회 회장




탄소나노튜브·그래핀 소재 앞세워 2020년 매출 1조 목표


■ 상보는

비닐포장재 제조회사에서 디스플레이 핵심부품인 광학필름 기업으로 탈바꿈한 상보의 큰 줄기는 인쇄코팅 기술이다. 비닐포장재에서 카세트테이프용 필름, 윈도 필름, 광학 필름으로 끊임없이 변신해온 것.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새 길을 찾는 진화였다"고 김상근 상보 회장은 말한다.

이제 상보는 탄소나노튜브(CNT)와 그래핀을 기초소재로 종합나노소재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CNT 투명전극센서는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양산된다. 7월 중 김포 양촌산업단지 내 CNT 공장이 완공되면 고객사 승인이 완료되는 4ㆍ4분기부터 월 40만개 규모의 CNT 터치센서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고객사가 확대되는 내년부터는 월 300만개 생산을 기대하고 있다.

CNT 필름은 현재 터치스크린용 투명전극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산화인듐주석(ITO) 투명필름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다. ITO 필름은 희귀금속인 희토류를 원료로 하는데다 일본이 제조 관련 원천특허를 보유, 전량 수입하거나 기술 라이선스를 통해 국내에서 일부 생산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당초에는 ITO 필름을 생산하기로 했지만 단가가 높고 공급도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해 CNT 필름을 대체재로 개발하게 됐다"며 "CNT를 이용한 각종 필름은 터치스크린 패널뿐만 아니라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정전기 방지 필름, 전자파 차폐 필름 등 다양한 제품에 쓸 수 있어 대한민국 대표 소재부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는 오는 2020년에는 CNT 필름과 연료감응형 태양전지(DSSC) 등 신사업 부문이 총 매출의 50~6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광학 필름 매출이 85%에 달했다. 김 회장은 "2020년에는 현재 주력상품인 광학 필름 매출이 5,500억원 이상, 신사업 매출이 6,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CNTㆍ그래핀을 기초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상용화한다면 매출 1조원 달성 시기는 좀 더 앞당겨질 수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르면 2015년에는 마곡지구에 연구개발(R&D)중심센터를 설립해 사업 간 시너지를 높일 방침이다. 김 회장은 "서울시가 조성 중인 마곡산업단지에 약 390억원을 투자해 지하1층, 지상6층, 연면적 1만914㎡ 규모의 나노융합연구소를 건립할 예정"이라며 "현재 연구직원이 40명인데 올해 90명까지 확충하고 R&D 중심 사옥 건립 이후에는 연구인력을 대폭 늘려 기술 중심의 성장 스토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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