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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체성 선거와 정책 선거


사람에게 과거의 실수를 깨닫고 미래를 바꾸어가는 지혜가 중요하듯이 정당에는 지난 선거에서의 패인을 분석하고 다음 선거 전략을 모색하는 과정 또한 필수적이다. 지금 미국 워싱턴에서는 대통령선거와 상원선거에서 쓴맛을 본 공화당이 향후 진로를 놓고 한참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 절반 이상의 미국민들이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4년 전보다 경제상황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반에도 못 미친다. 이 같은 현실 앞에서도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실패한 공화당으로서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척 곤혹스러운 지경이다.

흘러간 정책 고집 롬니ㆍ공화당 패배

치열하고 길었던 후보경선기간 동안 밋 롬니 후보의 반복된 실언과 지나친 우경화는 중도층을 돌아서게 했다. 본인의 치적과 비전보다 경쟁후보의 과거와 배경을 집중 공략한 버락 오바마 캠프의 선거운동이 주효했다는 분석 또한 유효하다. 여전히 유권자의 절반가량이 현 경제위기를 전임인 조지 부시 대통령 탓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세금감면ㆍ규제완화라는 흘러간 노래만 고집했던 롬니의 전략적 실패라는 시각 또한 이론을 달기 어렵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할 공화당에게 특히 뼈아픈 사실은 비(非)백인층 유권자가 일방적으로 오바마 편을 들었다는 점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히스패닉계 미국인이 7대3, 특정 정당으로의 편중이 과거에는 비교적 약했던 아시아계 미국인 역시 7대3으로 첫 흑인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진 결과를 놓고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이대로 가면 남부 농촌 지역의 백인 남성들만 대변하는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선거에서 완승한 민주당의 다음 대선 걱정도 이러한 정체성 (identity) 중심의 선거공학적 계산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오는 2016년 대선에서도 비백인층의 전폭적 지지표를 끌어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지지층이 4년 후 69세가 되는 힐러리 클린턴의 출마선언만 목을 빼고 기다리는 이유도 히스패닉ㆍ아시아계와 여성표를 결집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만들어보자는 시나리오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셈법을 마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정체성 위주로 내편 네편 가르는 선거전략만으로는 아이디어가 중심이 되는 정치개혁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기간 내내 집권 2기 청사진 제시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오바마 대통령, 부시와의 차별화에 실패한 롬니 후보를 돌이켜보면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정책적 아이디어가 고갈돼버린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우리도 정책선거 새 지평 열렸으면

적극적 정부가 해결책이라던 뉴딜(NewDeal) 아이디어도 작은 정부가 정답이라던 레이거노믹스도 이미 그 효험을 다한 상황이니 기껏해야 "현명한 정부(smart government)가 대안"이라는 어정쩡한 구호만 나돌아다니는 현실이 돼버렸다.

다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정체성 선 긋기를 뛰어넘어 정책선거의 새 지평을 보여준 일례로 론 폴(77) 공화당 경선후보에게로 10~20대 청년 지지층이 연설회건 온라인상이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라크전을 처음부터 반대했고 통화팽창 정책에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던 텍사스 출신 노(老)정객의 참신한 아이디어 정치에 세대를 넘어 환호와 지지를 보내는 미국 젊은이들이 보여준 낯선 풍경….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 될 날이 언젠가 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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