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체들의 실적악화에는 나름의 원인이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공히 유로화·루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판매가격이 낮아지고 공장 가동률도 떨어진 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가뜩이나 신흥국들의 경기 부진과 업체 간 경쟁격화로 힘든 판에 엔저(低) 현상까지 심해져 수출기업들을 괴롭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출 간판기업들의 실적악화와 더불어 경제 전반에 위기의 징후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관세청이 공개한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수출액은 272억5,400만달러로 전년동기보다 11.1% 줄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이 4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복판에 있던 2009년 이후 이토록 수출상황이 악화됐던 적은 없었다. 수출부진과 맞물려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마저 0.8%에 그쳐 4분기 연속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 장기불황의 초입과 닮은꼴이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적을 결코 소홀히 넘길 수 없는 형편이 됐다.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라 추경 편성과 추가 금리 인하 등 다양한 방책들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처방만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음은 이미 확인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젠 경제의 고비용 구조를 변화시킬 제도 혁신과 기업투자 촉진을 위한 과감한 규제완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구조개혁을 주도해야 할 국회는 정치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여야는 경제의 위기징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정쟁을 멈추고 민생정치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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