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폐막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모인 각국 지도자들의 관심은 당초 예상과 달리 그리스가 아니라 이탈리아에 맞춰졌다. 정상들은 이탈리아에 대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확실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며 강하게 압박했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를 해명하느라 회의 기간 내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확산에 대한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채 수익률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여기다 극심한 정치혼란까지 가세해 정부를 사면초가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따라 8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에서 나올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충방안 등 구체적인 후속 조치의 강도에 따라 이탈리아는 물론 유로존 운명이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가 위기 진원지로=지난 4일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가슴에 또 하나의 비수가 꽂혔다. 이탈리아 출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취임 사흘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이탈리아 국채 추가 매입을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재는 "국채 매입은 금융통화정책이 잘 통하도록 한시적으로 벌이는 개입"이라고 잘라 말했다. ECB의 국채매입은 그동안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든든한 방어막으로 작용해왔다. ECB가 매입한 국채 규모는 현재까지 약 1,000억유로에 이르고 있으며 이중 대부분이 이탈리아 국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ECB가 발을 빼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불신은 IMF와 EU가 이탈리아의 연금·규제개혁 추진현황 등을 감시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시장을 동요하게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드라기 총재의 발언으로 4일(현지시간) 6.370%를 기록해 이른바 '마(魔)의 7%'에 근접하고 있다. 통상 국채 수익률이 7%에 달하면 정부로서도 금리부담을 감당할 수 없고 '매수거부 사태(Buyers' Strike)'가 발생해 구제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리스나 아일랜드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당시의 국채 수익률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이달 말부터 'IMF 모니터링팀'이 이탈리아로 건너가 긴축이행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모니터링팀은 분기 단위로 이탈리아의 긴축정책이 얼마나 진척되고 이행됐는지를 점검해 글로벌시장에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와 EU 재무장관회의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발등에 불'로 떨어진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해결책 모색이 주요 논제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에릭 슈트루츠 코메르츠방크 전략가는 "그리스의 후속변수는 이탈리아에 맞춰지고 있다". 며 "이제 유로존 전체의 안정 여부는 이탈리아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벼랑 끝에 몰린 베를루스코니=이런 가운데 현 정부의 퇴진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반대시위는 갈수록 격화돼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서는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주도로 수만명이 모인 가운데 총리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그동안 집권당을 옹호해왔던 이탈리아 주요 언론들마저 "이탈리아는 신뢰할 수 없다"며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도 "이탈리아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영국 가디언은 베를루스코니의 리더십과 연립정권 내의 정치적의 결속성에 대해 "달걀 껍데기 같다"고 꼬집었다. 그동안 정치적 도박을 통해 숱한 위기를 넘겨왔던 베를루스코니였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은 편이다. 영국의 바클레이스캐피털은 보고서를 통해 "이탈리아 정부가 대규모 민영화 계획에 따른 자산 매각과 노동시장 개혁, 연금 개혁 등을 얼마나 잘 추진할지가 관건"이라며 "이를 통해 시장심리를 변화시키는 게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프랭코 판본첼로 존 캐보트 대학 정치학 교수는 "이탈리아 앞에 놓인 길은 IMF의 개입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며 "이탈리아가 외부의 감독을 받게 되면 어떠한 정부라도 개혁 조치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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