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한중석 인수/나승렬 거평그룹 회장(결단의 순간)
입력1996-10-15 00:00:00
수정
1996.10.15 00:00:00
김희중 기자
◎“알짜” 판단 예정가 훨씬 높게 응찰/경쟁사 재력 감안 100억 더 써내/인수 첫해부터 정상궤도 효자기업 총애/“50평생 가장 떨리고 힘 들었던 순간” 회고94년 2월28일 서울 을지로 산업은행 본점 13층 대회의실 대한중석 입찰현장.
거평그룹 나승렬 회장은 어느때 보다 떨렸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연신 심호흡을 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며칠밤을 지새운 끝에 낙찰예정가로 6백61억1천만원을 써냈지만 경쟁상대인 대성산업의 자금력이 워낙 튼튼한 터라 안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기업을 공개경쟁으로 인수에 성공했지만 이날 처럼 떨리고 가슴 답답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오 2시 입찰결과가 발표됐다. 『대한중석의 새주인으로 거평이 결정됐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경제의 유일한 외화벌이 창구였고 대표적인 국영기업이던 대한중석을 재계의 무명신인인 거평이 먹어삼켰다. 항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말했다.
나 회장은 지금도 그때를 50평생 가장 떨리고 힘겨웠던 시간이었다고 술회한다.
『입찰을 앞두고 며칠동안 전국의 유명한 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입찰을 앞둔 며칠전 꿈속에 6이라는 숫자를 계시받아 일단 6백억원 이상을 써내기로 작정했습니다. 회사내에서는 너무 많이 쓰는게 아니나며 난색을 표하는 경영진도 많았지요. 그래서 예정가보다 90억원을 더 써냈지요.』 나회장이 공개하는 비화다.
삼강산업 경리부장 출신인 나회장은 어느 누구보다도 대한중석이 우량기업인 것을 한눈에 알았다. 「부자 망해도 3년은 먹고 산다」는 속담대로 대한중석은 곳곳에 부동산·채권 등 유동성 자산과 골동품 등 생각보다 훨씬 내용이 알찬 기업이었다. 마침 원진레이온을 인수하라는 제의를 받은터라 나회장은 고심했다. 그러나 원진은 산업재해자보상도 어려운 문제였고 공해산업인데다 사양업종이어서 이내 포기했다.
원진레이온을 거절하고나서 얻은 정보가 대한중석이 공매를 진행중인데 원매자가 없어서 안팔린다는 것. 그 회사에 다니던 고향선배인 염동일씨(현 (주)거평 부사장)이 중석 관리담당 상무를 지내다가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문으로 영입, 필요한 자료와 정보수집등 인수에 관한 모든 책임을 맡겼다.
대한중석 3차입찰에서는 경북 달성출신의 대성산업이 강력한 경쟁자였다. 대성은 고향을 배경으로 끝까지 경쟁하는 바람에 낙찰이 예정가보다 1백억원이 더 높아졌다. 결국 나 회장은 6백61억원을 써냈다.
나 회장은 대한중석을 인수하기 위해 상당한 기간동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자금이 달려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1차 유찰때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도전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는 평소 소신대로 대한중석을 손에 넣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시작했다. 운도 따랐다.
93년 부동산경기가 기지개를 켜면서 그전까지 분양이 안되던 동대문도매센터분양이 순조롭게 이뤄졌던 것이다. 분양대금과 부실기업으로 인수했던 대동화학의 서울 광장동 부지 등을 팔아 자금을 든든히 마련하고 3차 입찰때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오는 법. 문제는 그 기회를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다. 나 회장은 그것을 해냈다.
이렇게 어렵사리 준비를 한 끝에 대한중석을 인수하니 항간에서는 거평의 뒤에는 정치거물이 후원하고 있다느니 별의별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다.
나 회장은 그때를 『참 많이 서운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회사를 살리겠다고 나섰더니 별별 소리가 다 들렸다』고 말한다. 나 회장은 『나는 초등학교 졸업에 전라도 사람입니다. 당시 재벌에 속하는 호남기업들도 정치권과의 관계를 조심할 정도로 몸을 사리는 판에 일개 중견기업을 꾸리고 있던 내가 학연이 있으며 정치권과 무슨 줄이 닿았겠느냐』고 반문하곤 했다. 대한중석 인수에 1백억원 이상을 더 쓰고 낙찰받았지만 나 회장이 내린 당시의 결단은 지금 그 이상의 대가를 그룹에 안겨주고 있다.
대한중석은 밖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알짜기업이었던 것이다. 포철주식·부동산 등 보유자산이 엄청났다. 폐광된 탄광의 중석폐기물에서 신소재를 뽑아내는 행운도 따랐다. 텅스텐 소재의 특수공구가 해외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수출도 호조로 돌아섰다. 인수 첫해부터 경영이 정상궤도에 올라 거평그룹에서 효자기업으로 총애를 받고 있다.<김희중>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