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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설/1월 1일] 21세기를 기다리며

1910년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이었다. 이때만큼 유럽의 왕족이 대거 모인 날도 없었다. 에드워드 7세의 관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윈저 궁까지 옮기는 동안 그 뒤로 독일 황제 등 8명의 유럽 왕과 이집트ㆍ중국ㆍ일본 등의 지도자가 대열을 이뤘다. 하지만 이는 20세기의 '대표 장면'은 아니다. 오히려 19세기의 잔재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이 세계의 슈퍼파워로 떠오른 다음에야 진정한 20세기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의 첫 10년 역시 18세기의 에필로그나 다름없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야 19세기적 유럽이 탄생했다. 당시의 '요조숙녀'들은 의회에서조차 거대한 드레스에 입고 벗기 불편한 속바지를 입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거의 가슴께 붙어있던 당시 드레스의 허리선이 제 자리를 찾았고 크리놀린(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입었던 틀)의 시대가 끝났다. 1500년대 초의 사건도 주목할 만하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독일의 비텐베르크 교회 앞에서 95개 조항을 발표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 열풍은 이후 150년간 전 유럽을 휩쓸었다. 당시 최고로 유행한 남성복은 절개장식과 패드를 덧댄 꼭 끼는 셔츠(더블릿), 그리고 바지 앞에 차는 천주머니(코드피스)였다. 물론 이처럼 각 세기 초반의 중대사건을 집어내는 일은 후세 사람들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1752년까지 대영제국과 그 식민지 국가들은 3월25일을 한 해가 끝나는 날로 쳤다. 16세기에 일부 국가들이 당시 보편적이던 율리우스력에서 현대의 그레고리력으로 날짜 계산 방식을 바꿨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훨씬 나중에야 바꿔서 그 오차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달력을 썼던지 간에 매 세기가 달력상에서 시작된 후 10~20년이 지나서야 진정한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흥미롭다. 덕분에 이제 2010년을 맞은 우리도 지난 10년을 20세기의 잔재로 여기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진정한 21세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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