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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치가 사라진 사회
입력2005-01-10 16:33:56
수정
2005.01.10 16:33:56
김형기 <증권부장>
[데스크 칼럼] 가치가 사라진 사회
김형기
참여정부가 신년 들자마자 교육개혁을 위해 내세운 이기준 교육부총리는 결국 자진 사퇴했다.
그로서는 인생을 마무리할 가장 중요한 순간 ‘평생 교육계에 몸담았던 학자로서는 너무 교육적이지 않은 행각들’만 속속 드러낸 채 추하게 물러나게 됐다.
덕분에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번 이 부총리의 기용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청와대 보좌진 등이 벌써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 부총리를 국가 교육정책의 수장감이라고 믿어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사람들은 물론 그의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를 일’이라며 혀를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치관이 혼란스럽다
국가 차원에서 이번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개선책을 찾아보라고 할 정도로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개개인들로서는 가치관이 극도의 혼란을 겪게 생겼다.
명색이 국립대 총장까지 지낸 ‘국가적 대학자’가 자식의 이름까지 빌어가며 재산욕심을 낸 사실 자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무척 난감하다. 특히 개인적인 치부를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그가 아무 거리낌 없이 선뜻 교육부총리 자리를 받아들였던 대목에서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절대 아이들 공부 죽어라고 시키지 마라. 공부 잘한다고 돈 잘 버는 것도 아니고, 출세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대 총장 출신도 돈 앞에서는 체면을 안 따지는 세상인데 돈 버는 능력만 확실하게 키워주면 그게 최고다.”
앞으로 서민들 술자리마다 이 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아파트 투기, 땅 투기를 해서라도 돈부터 벌어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된 듯하다. 돈이나 재물을 눈앞에 놓고 욕심을 내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돈과 재물을 탐내다 자칫 잃어버릴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혼돈의 마지막은 파괴뿐
새해 들자마자 잇단 방화사건이 터지고 있다.
지난 3일 출근길에 서울지하철 7호선 철산역에서 온수역으로 향하던 전동차 일부가 방화로 전소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50대로 추정되는 신원미상의 남자가 객차 안에다 불을 붙였다는 것 정도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대구지하철 참사를 떠올리게 만든 아찔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보다 훨씬 작아서 사람들의 눈길을 크게 당기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일주일 가량 뒤인 9일에도 노숙자 신모씨가 시내 극장에서 의자에 불을 붙였다. 다행히 스프링쿨러가 작동해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다중이 모이는 곳에서 의도적으로 행한 방화다.
지하철 방화나 극장 방화는 단순히 생각하면 일과성 범죄다.
하지만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사안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그들이 단순한 정신병자여서, 또는 갈 곳 없이 떠도는 행려병자여서 저지른 범죄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가치가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한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도 마찬가지다.
보고 배울 것이 없는 사회 속에서 개인들은 언제든 익명을 향해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지도층의 가치 재정립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이 부총리의 기용과 자진 사퇴로 대변되는 이번 사안을 ‘적정한 인물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한 정부의 인사시스템 문제’로 좁혀서 받아들인다면 앞으로도 매번 인물과 형태만 다른 제2ㆍ제3의 인사시스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을 이 부총리의 ‘개인적인 오류’라고 편하게 덮고 넘어가기에는 우리 사회의 가치 혼란은 벌써 일정 한도를 넘어섰다.
솔직히 인정하자. 한국은 벌써 오래전부터 ‘도덕 불감증’에 빠져들었다. 지도층의 도덕불감증은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고 급속도로 공범을 만들어낸다. 지금 한국에서는 개인들의 분노가 익명의 다중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지도층은 매일 매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되뇌여야 할 것이다.
입력시간 : 2005-01-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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