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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대타협, 더 미룰순 없다] 항상 '역지사지' … 상대방은 인정·신뢰하자

<3부-3>한국형 모델을 찾아라-대타협을 위한 토대들<br>정부가 앞장서 勞와 使·국민들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br>'끝장 토론'해서라도 '대화 통한 합의'에 전폭지지 보내야



“한국에 대한 조언은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노사 모두 장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랄시 막누손 스웨덴 웁살라대학 부총장) “역사와 환경이 다르므로 네덜란드 모델이 다른 국가에 적용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 주체 모두가 노력해야 할 뿐입니다.” (옐레 피서르 암스테르담대학 교수) “아일랜드 모델과 그 교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아일랜드는 작은 나라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로리 오도넬 아일랜드 국가경제사회협의회 사무국장) ‘사회 대타협’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유럽 강소국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자국이) 다른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당시의 시대상황과 조우해 만들어진 독특한 모델이 사회ㆍ문화적 배경이 다른 국가에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들의 말에는 겸손함이 짙게 깔려 있다. 우리 상황에 맞는 사회적 대타협 모델은 과연 존재할까. 한국 사회가 대타협을 성사시킬 수 있는 전제조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장진호 박사는 이와 관련,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정신이 가장 시급히 요구된다”며 “세력관계에서 느껴지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당국자들과 서민 간의 괴리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아 나선 유럽의 대타협 성공 국가들에서는 한결같이 사회 구성원 간의 돈독한 신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태용 주아일랜드 대사는 “대타협을 통한 안정적인 노사관계야말로 적극적인 외자유치에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됐다”며 “이면에는 각 주체들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사회 대타협에 대한 공감대 확보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또 하나의 토대’다. “정부와 국민이 기업과 노조를 이끌어가는 형태의 타협과정이 필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노조 조직률이 낮고 기업들의 자발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정부와 시민사회가 나서 사회적 대타협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도출해내기 위해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를 이어가는 ‘끝장토론’식 대토론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서구식 사회적 대타협을 그대로 대입할 수 없는 우리 여건을 감안해 이구동성으로 요구한 내용의 골자다. 특히 이들은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노와 사, 아울러 국민들을 설득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라는 의미다. 역설적이지만 사회 갈등이 정부의 노력만으로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사회 대타협’의 현실적 환경은 상당히 취약해졌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타협의 첫 사례인 노사정위원회의 확대 개편이 추진돼 희망을 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장원 박사는 “현정부도 대타협의 효용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놓고 올해 내내 고민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노정 간의 대립각이 날카로워지는 상황에서 ‘투쟁’에 지친 국민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을 어떻게 실현시켜갈지 방법론에 대한 창의적인 논의가 시급하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대타협이라는 주제는 수년 전부터 치열한 논쟁을 이어오며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가 주도해 네덜란드식 사회적 대타협의 접목을 시도했으나 부정적인 반응에 밀려 구상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서울경제가 ‘사회 대타협’이라는 화두로 연재 시리즈를 진행하자 이해관계자들은 또다시 ‘우리 사회도 대타협의 시점이 무르익었다’는 측과 ‘한국 상황에는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측으로 갈려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대타협 불가론자들은 “대기업들에 타협을 받아들일 만한 정치적 상황이 부재하고 그들이 고율의 세금이나 경영 투명성을 수용할 리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와 딴판으로 한국의 노조조직률이 낮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부 역할에 대한 기대치는 밑바닥 수준이다. 대타협에 관한 한 ‘관료=비합리적이고 무능한 집단’이라는 원색적인 비판도 나온다. 심지어 친기업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할 리 없고 결과적으로 강자만 살찌울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보였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이 대타협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정부나 어느 한 경제주체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보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박사는 “타협의 목적 중 하나는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사회구성원들이 공동 대응하는 것”이라며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난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 등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만큼 타협의 필요성 역시 증대됐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한달여에 걸쳐 대타협에 성공한 유럽 국가를 둘러보며 확인한 것은 대단한 노하우나 정교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대타협의 출발로부터 수십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들은 크고 작은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대화를 통한 타협’을 핵심가치로 삼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 역시 여전히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사회통합과 국가의 성장이라는 가치를 지켜가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었다. 대타협의 진정한 토대. 그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내는 ‘대화를 통한 타협에 대한 무한 신뢰’였다.
김성중 노사정위 위원장 '정부 역할' 강조
"지도자 관심·의지있어야 사회대타협 이룰수 있다"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 대타협이 성공하려면 국가 지도자의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대화의 전통이 없는 나라에서 대화를 통한 합의가 이뤄지려면 지도자의 관심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김성중(사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1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각 부처들이 대화의 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대타협을 이룰 수 있다"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 대타협의 첫 사례인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1998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채택하며 주목을 받았고 올해로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8월 제8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김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노사정위 개편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고 타협하는 사람을 '사쿠라'라고 부르는 흑백논리적 사고가 많이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 여전한 경직된 사고가 대화를 통한 합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예를 들어 비정규직 입법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 국회에 2년간 계류됐는데 노사관계선진화 입법은 노사정위 합의 후 한달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며 "이제는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여야 정책이 성사되는 시대"라고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비정규직 문제나 사회 양극화 해소 등 굵직한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노사정위 같은 사회적 대화의 틀이 효과를 거두려면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법은 정부가 만들어 입법예고만 하면 됐지만 노동 문제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은 서로 합의해 풀어야 한다"며 "지도자가 관심을 갖고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정부 부처의 무관심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아무리 참석해달라고 요청해도 많은 정부 부처들이 노사정위 회의에 오지 않는다"며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화의 틀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또 "앞으로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수준을 넘어서 (이해 당사자들과) 토론하고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며 "이것이 선진화된 정부가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 대타협의 첫 사례인 노사정위의 지난 10년에 대해 그는 성공과 한계를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화의 전통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노동 분야에 이처럼 사회적 대화가 꽃 피우게 된 데는 노사정위의 힘이 컸다"면서도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아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등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의제를 다뤄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노사정위가 우리 사회의 대타협에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는 노동 문제 외에도 환경ㆍ양극화 등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는데 이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라며 "노사정위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타협으로 풀어나가는 하나의 모델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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