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그야말로 '준비된 총리'로 꼽힌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에서 국정운영의 틀을 짜는 국가전략상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무상을 지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간 총리가 상당한 현실감각도 갖추고 있는 만큼 실현성이 높은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헝클어진 정국을 타개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간 총리가 기존 정책기조를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이 계속 정권을 잡고 있는 데다 간 총리가 내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등판한 '구원투수'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부채가 가장 큰 난제로 꼽히는 만큼 재정건전성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건전성 강화에 주력할 듯 =주요 국제기구들은 올들어 일본의 국가부채 문제를 잇달아 경고하고 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 3월 말 현재 일본의 국가부채는 900조엔을 넘었으며 올해 말에는 973조엔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국가부채 비율은 180%를 돌파해 선진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국가부채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그저 '말'로 그치고 말았다. 하토야마 정부가 통과시킨 2010 회계연도(2010년 4월 ~ 2011년 3월) 예산안은 총 92조엔 규모로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세수가 37조엔에 달하는 반면 국채발행액은 44조엔으로 국가부채는 더 늘어나게 됐다. 따라서 간 총리는 재정건전성 강화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일본 재계가 주문하고 있는 '소비세 인상'이다. 일본의 소비세율은 현재 5%로 1%포인트만 상향 조정해도 연간 2조~2조5,00억엔의 세수증대 효과가 발생한다. 5%포인트를 올리면 10조엔의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재정적자 축소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일본 경제가 아직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지출을 급격히 줄이기는 어려운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참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 복지분야 핵심공약인 '자녀수당 지급'과 '고교 교육 무상화' 등을 철회할 수는 없다. 간 총리도 "재정수지 회복은 단 하룻사이에 달성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민신당이 요구하는 '우정성 개혁법안' 고수할 듯= 간 총리의 등장과 함께 이른바 '반(反) 오자와 세력'들의 입지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국가전략상이 이날 신임 관방장관으로 지명된 것을 비롯해 오자와 반대파들이 내각에 중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오자와파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주요 경제정책들이 빛을 보게 될 전망이다. 특히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이 주도한 '고속도로 요금 상한제'는 계속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아울러 연립정권의 유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에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신당에 상당한 양보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민신당의 주도로 마련된 '우정성 개혁법안'을 계속 유지시킬 가능성이 높아 졌다. 새 정부의 운명은 무엇보다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결과에 달려 있다. 전체 240명 가운데 절반을 뽑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과반을 얻는 데 실패한다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도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간 총리는 전일 "선거 결과에 대해 낙관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 간 총리는? 간 나오토 총리는 세습 의원으로서 총리에 오른 전임자들과는 달리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 차례 낙선의 설움을 딛고 정치인으로 데뷔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간 총리는 1946년 야마구치현에서 유리ㆍ화학제품 회사의 중역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도쿄 공과대학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출발은 험난했다. 3번 연속 총선에서 낙선한 끝에 지난 1980년 마침내 중의원으로 당선된 후 도쿄에서만 10선의 영예를 안았다. 간 총리는 일본 민주당의 살아 잇는 역사로 평가된다. 그는 '타도 자민당'의 선봉장을 자처하며 1996년 하토야마 전 총리와 손잡고 옛 민주당을 만든 데 이어 1998년에는 다른 당을 흡수 통합, 신민주당을 창당했다. 지난 1998~1999년, 2002~2004년 두 차례에 걸쳐 당 대표를 맡았고 하토야마 체제에서는 당 대표대행과 부총리, 재무상 등을 지냈다. 그래서'민주당의 적통','DNA까지 야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민주당의 실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오자와와 일정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자금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오자와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라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간 총리는 일단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순탄한 출발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미우리 신문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2일과 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9%를 기록해 지난 달 29일과 30일 때의 20%에 비해 9%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제 1야당인 자민당의 지지율 18%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한동훈 기자 hooni@s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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