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불길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로 위기 해법이 안갯속으로 접어들자 시장의 역습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주요국과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시키는 등 시장 세력이 불안감을 부채질하면서 재정 위기가 더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각국 정치권이 이 같은 불안감을 진화하지 못할 경우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 이후처럼 정치가 시장에 'KO패'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붕괴됐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이 시장과의 싸움에 돌입했다"고 선언했다.
시장의 반격은 우선 국제신용평가사에서 연일 쏟아지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국제신평사인 무디스는 ING 은행의 신용등급을 'Aa3'에서 'A2'로 2단계 강등시킨 것을 포함해 네덜란드 5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1~2단계씩 강등시켰다. 무디스는 특히 ING 은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을 제시해 추가 강등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무디스는 "네덜란드 은행들의 경영 상태가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며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유럽 은행들에 대한 추가적인 강등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중견 신용평가사인 이건 존스는 14일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한 단계 강등시키고, 향후 전망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이건 존스는 성명에서 "프랑스는 지난 18개월 동안 차입비용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계속되면 상황이 변할 수 있다"며 "특히 새로 출범한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정책이 재정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등배경을 설명했다.
이 같은 신평사들의 잇따른 신용등급 강등은 유로존 지도자들의 재정위기 해결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스페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9일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 신청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시장의 혹평이 쏟아지면서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급기야 14일에는 장중 한 때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7%를 돌파하기도 했다. 스페인 국채의 부도 가능성을 반영하는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지난 달 1일 이후 127.64베이시스포인트(1bp=0.01%)나 올라 14일 603.830bp를 기록했다.
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4일 독일 의회에서 "유럽이 통화동맹을 넘어 재정동맹, 완벽한 정치동맹으로 나아가기 위해 시장과의 경쟁에 돌입했다"고 선언했다. 재정위기국과 은행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시켜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는 시장세력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다만 메르켈 총리는 '유로본드'와 같은 해결책에 대해서는 "역효과가 우려된다"면 재차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독일의 자원이 무한정인 것은 아니다"며 "유럽의 파트너들이 독일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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