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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전광판이 또다시 퍼렇게 물들며 세계 경제위기가 현재 진행형임을 실감하게 했다. 미국ㆍ유럽의 상황이 점점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외국인과 국내 기관들은 일제히 주식을 팔았고 코스피지수는 100포인트 넘게 빠지며 시가총액도 11개월 만에 1,00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19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15.7포인트(6.22%) 내린 1,744.88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하락폭은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8년 10월16일(126.5포인트) 이후 34개월 만에 최대치며 국내 증시 역사상 세 번째로 컸다. 하락률은 8일(-3.82%)을 넘어 연중 최대치를 다시 썼다. 이로써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8월31일 이후 처음으로 1,750선 밑으로 내려왔다. 지난 5월2일의 사상최대치(2,228.96)와 비교하면 무려 21.7%가 빠진 셈이다. 증시가 급락하면서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도 985조5,080억원으로 떨어져 지난해 9월13일 이후 11개월 만에 1,000조원 아래로 내려갔다. 코스닥지수도 33.15포인트(6.53%) 내린 474.65포인트로 마감되면서 6거래일 동안 이어진 상승행진을 끝냈다. 이에 따라 이날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은 71조6,730억원이 줄었다. 이날 국내 증시에서 상승한 종목은 전체 매매거래 종목 1,921개 중 8%인 154개뿐이었고 무려 90.4%에 달하는 1,736개는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가 지수 하락을 부채질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각각 2,568억원과 3,12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16일 반짝 순매수 전환 이후 사흘 내리 국내 주식을 팔고 있다. 개인만이 1,623억원을 순매수했지만 떨어지는 지수를 받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가증권시장의 모든 업종이 하락한 가운데 선진국 경기에 영향을 받는 자동차ㆍ해운 등으로 구성된 운송장비(-10.89%)가 가장 많이 내렸고 의료정밀(-10.25%)과 화학(-9.81%), 기계(-7.85%), 건설(-7.57%) 등의 하락폭도 컸다. 전날 급락의 영향으로 전기전자(-5.42%) 업종은 시장 평균을 웃돌았다. 코스닥업종 중에서도 운송장비ㆍ부품(-9.74%)이 가장 많이 빠졌고 종이ㆍ목재(-9.26%)와 반도체(-9.17%), 기계ㆍ장비(-8.99%), 의료ㆍ정밀기기(-8.96%) 등이 뒤를 이었다. 전날 뉴욕증시와 유럽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급락한 탓에 코스피지수는 개장 때부터 심하게 요동쳤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70.8포인트(3.81%) 내린 1,789.78포인트로 장을 시작해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무서운 속도로 낙폭을 키우며 1,760선까지 추락했다. 초반 코스피보다 하락폭이 컸던 코스닥시장에서는 코스닥스타선물에 대해 오전9시6분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호가 효력정지)와 서킷브레이커(주식매매 일시정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코스피지수는 오전 한때 낙폭을 60포인트대로 줄이며 1,797포인트까지 반등했지만 이내 다시 낙폭을 100포인트 넘게 키우며 오후에 1,760선과 1,750선을 차례로 내줬다. 장 막판으로 갈수록 주말을 기다릴 수 없다는 투자자들의 매도가 쏠리면서 하락세는 꺾이기는커녕 더욱 커졌다. 코스피선물시장에서도 급락세가 연출되면서 오후1시3분 코스피200지수선물 9월물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날 국내 증시가 폭락한 직접적인 이유는 유럽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위기로 전날 선진국 증시가 급락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미국에서 영업 중인 유럽 대형 은행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고 모건스탠리는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2%, 4.5%에서 각각 3.9%, 3.8%로 낮췄다. 유럽 일부 국가들의 위기가 유럽 은행들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전세계가 독감에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잇달아 나오고 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전날 이탈리아(-6.15%), 독일(-5.82%), 프랑스(-5.48%), 영국(-4.49%) 등 유럽 주요국 증시는 물론 미국 나스닥지수와 다우존스지수도 각각 5.22%와 3.68% 급락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이번 위기가 2008년 리먼 사태에 버금갈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며 위험관리에 주력할 것을 조언했다.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투자전략부 이사는 "미국이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금융 부문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세계 경제에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리먼 사태에 준하는 상황으로 당시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7.4배)을 대입하면 저점은 1,620 수준이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분석일 뿐"이라고 말했다. 양 이사는 "투자자들의 불안감과 패닉을 감안할 때 저점을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당분간 위험관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더블딥에 빠졌던 1981년의 미국 주가 수준을 현재 코스피지수로 환산하면 저점은 1,640 수준"이라며 "다만 유럽의 유동성 위기가 지속될 경우 유럽 정상들이 통화스와프(SWAP)와 단기유동성 관련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폭락장이 계속 이어질지 여부는 이번주 말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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