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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하자 객석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렀다. 우리에겐특별할 것 없는 옛 시골마을의 모습조차 한국 발레를 처음 접하는 중동 관객들에겐 놀라운 풍경이었다. 심청의 효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앞 못 보는 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있었다. 한국의 발레가 중동을 달궜다. 28일 저녁 8시(현지시간) 아라비아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오만 왕국(the Sultanate of Oman)의 수도 무스카트시에서 펼쳐진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심청'은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객석 1,055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공연은 지난 10월 12일 무스카트시에 새롭게 문을 연 로열오페라하우스 개관을 기념해 오만 정부가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식 초청해 성사됐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오페라 '투란도트'로 시작한 개관 기념 페스티벌은 12월 31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며 한국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 발레'심청'은 '투란도트'를 비롯해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돈키호테',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등과 함께 초청됐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세계 유명 발레단이 클래식 발레를 선보이는 가운데 창작발레로는 유일하게 우리가 초청됐다"며 "창작 발레인데도 티켓이 모두 매진돼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국의 발레 '심청'은 세계 유수의 공연단과 함께 초청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특히 '심청'이 공연된 28일이 오만 최대 국경일인 국왕의 생일주간이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최종현 주오만 한국대사는 "각국 외교 사절들이 이번 페스티벌에 자국 공연단이 초청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는데 '심청'이 초청받았다는 소식에 매우 기뻤다"며"한국은 오만 천연가스의 최대 수출국이고 건설ㆍ플랜트 등 한국 기업들이 오만에 대거 진출해 있어 오만은 한국에 굉장히 우호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연에는 터번과 히잡을 쓴 오만인들 못지 않게 오만에 거주하고 있는 유럽ㆍ미주 출신 외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오만에 전무했던 발레 등 문화 공연에 대한 갈증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발레 '심청'은 총 3막으로 구성됐다. 한자로 '효(孝)'가 크게 적힌 커튼이 걷히자 심청이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이야기가 담긴 1막이 펼쳐졌다. 거센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이 CG 배경으로 구현돼 생동감과 비장미를 더했다. 2막에서 펼쳐진 바다 속 용궁 모습은 다소 과장된 의상과 무대로 표현됐지만 심청을 맡은 발레리나 황혜민의 섬세하고도 과감한 춤 동작이 극의 균형을 유지했다. 왕궁에서 펼쳐지는 3막은 화려한 군무가 특징이었다. 특히 왕실 잔치에 모여든 맹인들이 눈을 뜨게 되자 기쁨에 추는 우스꽝스런 춤은 객석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2시간 30분간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두 번의 커튼콜이 이어졌다. 남편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는 마타르(여ㆍ28)씨는 "의상과 무대가 매우 독특해 눈이 즐거웠다"며 "기존의 클래식 발레와 다른 춤과 이야기가 매혹적이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온 칼리드(남ㆍ32)씨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심청 이야기는 가족을 중시하는 아랍인의 정서와 다르지 않다"며 "문화가 다른 오만 사람들도 감동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라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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